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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상망유린 댓글 0건 조회 3회 작성일 26-08-09 12:44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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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한 구석에(この世界の片隅に, In this corner of the world) /IMDb
※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81년 전 오늘 일본 나가사키에는 원자폭탄 '팻 맨'이 투하된다. 그로부터 사흘 전이었던 1945년 8월 6일, 유사 이래 최초의 원자폭탄 '리틀 보이'가 히로시마에 떨어졌다. 존 키건의 표현을 빌리면 그것은 '굉장히 장엄하고 뭐라 항의할 수 없을 만큼 결정적인' 태평양 전쟁 종결 방식이었다.
미디어는 전쟁의 극적인 모습을 주로 보이고 재구성하나 실제 전쟁은 폭탄이 떨어지는 순간에 국한하는 개념이 아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저 밥을 짓고 집을 청소하고 일을 하고 아이를 돌보며 전쟁 상태를 살아간다. 광복의 달을 맞아, 태평양 전쟁 막바지 히로시마 인근 가정집을 <이 세상의 한구석에> 완전판, <이 세상의 (그리고 다른 세상의) 한구석에>를 통해 경험해본다.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스즈는 열여덟 살에 인근 군항도시 쿠레의 호조 집안으로 시집 간다. 남편 슈사쿠, 시부모, 시누이 케이코, 조카 하루미와 함께 살며 부족한 식량을 대신할 요리를 궁리하고 옷감을 아껴 옷을 만들고 밭을 일군다. 공습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스즈는 그림을 그리고 가족의 식사를 준비한다. 1945년 여름, 폭격으로 조카를 잃고 자신의 오른손마저 잃는다. 종전 후에는 원폭이 떨어진 히로시마를 들려 가족의 죽음을 확인하고 다시 쿠레로 돌아온다.
이 작품은 전쟁을 생활의 크기로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됐다. 쿠레 공습이 시작되기 전까지 스즈에게 중요한 건 오늘 먹을 밥과 내일 입을 옷이다. 군함이 오가는 항구도 그에게는 그림 소재에 가깝고 군수공장 돌아가는 소리도 어느 순간부터 일상의 배경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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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즈는 그 일상을 지키려 한다. 그렇다면 그 집 안에서 매일 밥을 짓고 불을 끄고 식량을 구하고 아이를 돌보던 여성의 노동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시누이 케이코가 스즈에게 집안일을 맡기며 사실상 집을 지키는 역할을 요구하는 장면에서 답은 드러난다. 남성들이 전선을 향해 갈 때 여성에게 전쟁은 다른 방식으로 찾아온다. 밥을 짓고 배급을 받고 밭을 일구고 방공호를 파고 불이 붙으면 그것을 끄는 일까지, 모두 가구家口를 유지하기 위한 노동이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부족한 것을 아껴 쓰고 가족을 먹여 살리는 능력은 개인의 생활력이 아니라 국가가 요구하는 생존 능력이 된다. 당시 일제 수뇌부가 외쳤듯 총후銃後의 전선은 집 안에, 골목 사이사이에 있었던 셈이다. 작중 케이코는 스즈에게 명확히 말한다. "이 곳이 너의 전장이야. 도망갈 생각은 마."
스즈는 폭격으로 무너진 이웃집을 보며 독백한다. "덕분에 저들은 당당하게 떠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일반적인 재난 서사라면 집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축복이어야 한다. 그런데 스즈에게는 무너진 집이 떠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집이 무너지지 않은 스즈는 계속 그 자리에 남아 주어진 역할을 수행한다. 삶의 터전을 잃는 것이 동시에 그 공간에 붙들려 있던 사람에게 퇴장의 명분을 주는 역설, 집을 잃는 것이 곧 자유가 되는 순간이다.
이 지。에서 스즈가 길을 잃었다가 만나는 린의 존재가 중요해진다. 린은 쿠레 유곽의 유녀다.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공간에서 살아가지만 남성 중심 사회의 전쟁이 여성에게 어떤 삶만을 할당하는지 보여준다는 。에서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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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즈에게 집이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장소라면 린에게 유곽은 여성의 몸과 노동이 직접 거래되는 장소다.
두 여성 일상의 대조를 더욱 입체감 있게 하는 것은 둘 사이에 스즈의 남편 슈사쿠가 있다는 。이다. 스즈는 안전하다 믿었던 가정도 온전히 자신만의 공간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스즈는 폭격 소식에 린의 안위를 걱정한다. 건조하면서도 섬세한 감정 묘사가 압권이다.
작품은 전쟁이 평범한 여성의 삶을 어떻게 디자인하는지 보여주는 데 많은 공을 쏟는다. 종전 선언을 듣는 순간, 스즈는 분노를 터뜨린다. 아직 더 싸울 수 있지 않느냐고 오열한다. 눈앞에서 조카와 오른손을 잃은 그에게 패전은 그동안 감내해온 고통의 의미가 통째로 부정당하는 일, 일종의 '정의의 상실'로 다가온 탓이다.
하지만 스즈는 일방적 피해자로 남지 못한다. 분개하던 스즈는 태극기를 게양한 집을 발견한다. 원작 만화에서 이 순간 스즈의 독백은 훨씬 직설적이다. 폭력으로 남을 굴복시켜온 나라였으니 이제 폭력 앞에 무너지는 것도 당연한 일 아니냐는, 자신이 속한 나라의 정체를 겨냥한 자각이다. (영화 완전판에서는 감독이 이 대사를 너무 직접적이라 판단해 훨씬 우회적인 표현으로 순화했다.) 폭력으로 유지돼 온 세계가 결국 폭력으로 무너진다는 이 자각은, 자신이 부역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국가가 요구하는 일상을 살아왔던 스즈의 세계를 강제로 개방한다.
이것은 스즈에게 두 번째 '집 무너짐'의 목격이다. 앞서 폭격으로 무너진 이웃집을 볼 때 스즈는 이미 "덕분에 당당히 떠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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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집' 개념이 자신을 가두던 의무의 공간이었다면 이번에 무너지는 건 자신이 무고하다는 믿음, 스스로 짓고 그 안에 살아온 마음 속의 집이다. 그렇다면 태극기 앞에서 괴로워하는 것은 더 이상 모를 수 없는 사실을 직시한 데서 오는 충격의 여파일 테다.
이 장면에서 스즈의 시선은 처음으로 자신의 집 바깥으로 확장된다. 그동안 그에게 전쟁은 식탁과 공습과 식량 부족의 문제,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생활의 일부였다. 밥을 짓고 가족을 돌보며 버텨온 그 생활은 인간이 삶을 이어가는 방식이면서 동시에 국가가 원한 '전쟁 모드'가 조용히 유지되는 방식이기도 했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건 이 구조를 그럴듯한(전체주의를 연상시키는) 선언이 아닌 한 여성의 부엌과 마당과 식탁이라는 시선으로, 그리고 태극기 앞에서 무너지는 한 사람의 얼굴로 처리한다는 데 있다.
그리고 과거 식민지배의 역사를 의식하는 한국인 관객의 입장에서 이 지.은 영원히 외부자일 것 같았던 주인공의 시선이 자신의 것과 합치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작품의 마지막, 스즈는 원폭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를 발견하고는 자식처럼 키우기로 한다. 스즈는 영양실조로 인해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된 지 오래다. 그러니 이것은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것을 스스로 극복하는 순간이 된다. 이전의 집이 국가가 요구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지켜야 했던 공간이었다면 이제 폐허 위에서 스즈가 품는 것은 국가도 가족제도도 아닌, 전쟁 때문에 많은 것을 잃은 하나의 인간이다. 연대다.
이 세상의 (그리고 다른 세상의) 한구석에, 2019
감독 카타부치 스나오
각본 카타부치 스나오, 고노 후미요
원작 고노 후미요의 만화 <이 세상의 한구석에>
감상 라프텔
*전쟁, 여성, 밥, 그리고 로맨스, 소설 <그 남자네 집(2004)>
그에게는 그림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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