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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입기자 과거 기고 통해 본 역할과 고충 노무현 정부서 비서실 출입 막기 시작…청와대 출입=험지?, 춘추관 '섬'에 비유하기도 "좋은 것만 발제하려는 청와대와 새로운 것 찾으려는 출입기자 실랑이 계속될 것"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 청와대. 사진=정부기록사진집
'청와대 시대'가 다시 시작됐다. '대통령실 출입기자'는 이제 '청와대 출입기자', 어떤 의미에선 '춘추관 출입기자'가 됐다. 춘추관은 손오공게임 노태우 정부 때 청와대 동쪽에 신축한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프레스센터로 사실상 고립돼 있기 때문이다. 홍보소통수석실 산하 춘추관(구 보도지원비서관실) 직원들을 제외하면, 청와대 다른 직원들과 상주 공간이 다를 뿐 아니라 출입문이 다르고 출입기자들은 청와대 내 다른 구역에 원칙적으로 갈 수 없다. 조순용 전 KBS 기자는 과거 기고에서 춘추관을 “ 한국릴게임 섬”으로 표현했다.
대통령 집무 공간이라는 특수성과 대통령 경호문제, 외교·안보 이슈가 아니더라도 국내외 미칠 파장 등을 고려해 쉽게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는 이유까지 겹쳐 취재가 쉽지 않고 취재하더라도 기사화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미디어오늘은 과거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경험을 담아 남긴 자료를 종합해 부활한 '청와 황금성게임랜드 대 출입기자'에 대해 짐작해보려고 한다.
노무현 정부, 출입기자의 비서실 출입 금지
청와대(대통령실) 출입기자 취재 관행의 큰 틀은 노무현 정부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허원순 한국경제 기자가 2003년 관훈저널에 쓴 글과 신문과방송의 2003년 김만수 신임 춘추관장 인터뷰 등을 보면 김대중 정부때까지는 출입기자들이 바다이야기게임방법 비서실에 방문할 수 있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 초 개방형 브리핑제를 발표했는데 춘추관을 모든 언론사에 개방해 당국자 브리핑을 정례화하는 대신 비서실 방문취재 금지를 주요 내용으로 한다.
▲ 2008년 2월25일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국회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이임하는 노 알라딘릴게임 무현 전 대통령을 배웅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하루 두 차례(오전 11~12시, 오후 4~5시) 비서실 출입 취재가 허용됐다. 취재 장소는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사무실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일(2월25일)부터 금지하면서 사전 약속에 따라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식으로 바꿨다. 김대중 정부 청와대도 브리핑을 강화하겠다면서 기자들의 비서실 출입을 일시적으로, 심지어 물리력(경찰)을 써서 막는 경우가 있었는데 노무현 정부가 본격화한 것이다. 조순용 당시 KBS 정치부장의 관훈저널 글을 보면 하루 2시간'만' 비서실 출입이 가능하다며 다소 비판적으로 당시 분위기를 전했지만 이제 출입기자들의 비서실 출입은 가능하지 않다.
노무현 정부가 브리핑룸을 개방하겠다고 하면서 춘추관 출입매체와 기자 수가 늘었다. 김대중 정부 초인 1999년 중앙언론 25개사 출입기자 30명, 23개 지방언론사 기자 23명, 사진기자 31명이 '섬'에 상주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2003년 2월 기준 언론사 46개사, 출입기자 83명이었는데 같은해 11월에는 언론사 173개, 출입기자 309명으로 늘었다. 브리핑은 매일 오전 9시30분에 보도자료를 배포한 뒤 오전 10시와 오후 3시에 브리핑을 실시해 청와대 홈페이지와 KTV 등으로 생중계했다. 역대 첫 청와대 브리핑 생중계였다.
청와대 출입은 험지?
허원순 기자에 따르면 당시 청와대의 언론관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이 있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2003년 9월25일 언론 관행에 대해 “공무원이 기자만 보면 비실비실하고, 밤 12시에 정치부장을 찾아가 기사를 고쳐달라, 빼달라고 왜 하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같은해 10월31일 춘추관 게시판에는 “창작도 자유다. 자문자답도 자유다”라는 이병완 당시 홍보수석 명의의 방이 붙었다. 한 언론사가 '비서실 조직개편 추진' 기사를 썼는데 이를 부인하는 내용의 청와대 입장이었다. 해당 방을 본 기자들은 홍보수석의 과한 반응에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했고 '청와대의 과잉반응'을 주제로 기사를 쓸지 상의하기도 했다.
며칠뒤인 11월5일 춘추관 기자실에는 또 다른 안내문이 붙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내달(12월) 3일 김대중 도서관 개관 때 만난다는 기사를 쓴 언론사에 3개월 출입정지 조치를 내린다는 내용이었다. 허 기자는 청와대가 엠바고나 오프로 공지한 사안이 아닌 해당 언론사의 특종이었는데 대통령 일정이란 이유로 출입정지 조치를 내렸다고 지적했다. 청와대는 해당 단독보도를 따라 쓴(추종보도) 언론사도 징계조치 하겠다고 했다. 당시 대통령은 개방과 합리를 말했지만 청와대 참모들은 각종 수단을 동원해 기자들을 고립시키고 통제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노무현·이명박 정부 청와대를 출입한 박재훈 MBC 기자는 2013년 '방송기자'에 쓴 기고의 제목은 <'청와대 출입'이라는 험지>다. 해당 글에선 다소 불편할 만한 기사를 썼을 때 청와대의 반응을 전했다. “어제 마각을 드러내던데? 우리 편 맞아?” 등의 반응이다. 박 기자는 “기사가 지적하는 본질적 문제에 주목하지 않고 기사를 쓴 기자의 '성향'을 먼저 살핀다”며 “가뭄에 콩 나듯 하는 비판 보도마저 '너는 누구편이냐'는 편 가르기에 밀려 무시되고 언론이 방기하는 사이, 정권은 국민과의 소통을 뒤로 한 채 그들만의 독주로 달려가기 일쑤였다”고 했다.
▲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 사진=청와대
따라서 청와대 출입기자의 역할은 중요하다. 특히 헌정사상 처음으로 파면당한 박근혜 정부를 돌아보면 더욱 그러했다. 최문선 한국일보 기자가 2017년 관훈저널에 쓴 글을 보면 박근혜씨는 해외 순방을 떠날 때 대통령 전용기 기자석을 '돌았다'고 한다. 순방 성과가 만족스러울 때를 제외하면 기자석에 와서 인사만 했고, 기자들 사이에선 “대통령이 순시 온다”고 표현했다. 언론은 대통령에게 소통을 주문했지만 청와대 전직 참모는 대통령 박씨에게서 “왜 그렇게 기자들 전화를 열심히 받냐”는 핀잔을 들었다고도 전했다. 최 기자는 “청와대는 기사 마감 시간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컨펌'을 중시했다”며 “박 전 대통령은 결정적 고비마다 언론의 쓴소리와 정반대의 선택을 했고 결국 스스로 몰락했다”고 썼다.
문재인 정부 초반의 청와대는 조금 달라졌다. 최혜정 한겨레 기자가 2017년 쓴 신문과방송 글을 보면 정부 출범 직후 청와대 대변인과 사회수석, 국민소통수석 등의 공식 브리핑과 백그라운드 브리핑(백블), 백백블로 이어지는 질의응답이 급증했고 청와대 관계자들도 기자들의 질문을 피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부가 출범한 같은해 5월 문재인 대통령은 세차례 기자회견장을 찾아 인사를 직접 발표하고 질문을 받았는데 이는 박근혜 정부때와 너무 다른 모습이라 “기자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에 최 기자는 “무엇보다 편해진 것은 워낙 브리핑이 많고 내용이 자세해 대통령의 진의를 '상상'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다만 비보도 질의응답이 많고 답변의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았다. 문동성 국민일보 기자는 2017년 관훈저널에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들은 기자들에게 공식 입장 및 추진 정책에 대한 '모범 설명'만 내놓을 뿐 감시와 견제를 위한 취재에는 소극적”이라며 “노무현 정부 '개방형 브리핑 제도' 도입 이후 참모진이 춘추관을 찾지 않는 한 출입기자가 관계자들을 만나기 어려고 풀 기자로 선정돼도 질문을 하거나 다른 사무실을 방문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문 기자는 출입기자들에게 비서동 공개를 제안했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중반 이후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춘추관은 최소한으로만 운영됐고, 정권이 교체됐다.
▲ 문재인 전 대통령. 사진=청와대
청와대 출입기자의 역할을 곱씹어볼 만한 글도 있다. 조순용 KBS 기자(정치부장)의 1999년 관훈저널 기고문이다. “우리 언론은 권력에 비판적 입장을 취하고자 하지만 한편으로는 권력에 대해 약점을 지니고 있다. 그 약점은 과거 군사독재시절, 권력이 언론을 장악하기 위해 만들어준 측면이 강하다. 특히 신문사들의 경영 측면에서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 말이다. 언론사들은 자기 회사와 관련 청와대의 생각은 어떤 것인지, 대통령의 발언에 어떤 숨은 뜻이 있는 것은 아닌지 알고자 한다. 만약 불리한 측면이 있다면 우선적으로 출입기자를 통해 적극적으로 설명하게 된다. 청와대 기자가 취재 이외에 수행해야 하는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의 하나인 것이다.” 조순용 기자는 해당 글을 쓰고 3년 뒤 김대중 정부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갔다.
이때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렀고 사회구조나 권력과 언론의 관계도 변했다. 그러나 권력과 언론의 속성, 더 구체적으로는 권력의 최정점인 청와대의 언론관이나 언론과의 관계가 얼마나 바뀌었을까. 신경렬 SBS 기자는 2013년 '방송기자'에 “좋은 것만 발제하려는 청와대와 뭔가 새로운 것을 찾고 다르게 해석해 보려는 취재 기자와의 실랑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썼다. 개방과 투명을 말하는 이재명 대통령의 청와대 시대는 얼마나 달라질지 지켜볼 일이다.
※참고문헌 조순용 <청와대와 춘추관, 그리고 기자들> 관훈저널 1999년허원순 <청와대가 아닌 '춘추관 출입기자'> 관훈저널 2003년 조동시 <6월초 브리핑룸으로 전환, 비서실 출입 취재 불허-청와대 기자실 개방, 김만수 신임 춘추관장에게 듣는다> 신문과방송 2003년성기철 <개방형 브리핑제가 취재 및 보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석사학위논문 2004년 신경렬 <좋은 청와대 뉴스, 좋은 청와대 출입기자> 방송기자 2013년 박재훈 <'청와대 출입'이라는 험지> 방송기자 2013년 최혜정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새 정부 취재 한달-비정상의 정상화, 왜 이리 낯설죠> 신문과방송 2017년 문동성 <청와대 취재 시스템의 변화와 평가> 관훈저널 2017년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 청와대. 사진=정부기록사진집
'청와대 시대'가 다시 시작됐다. '대통령실 출입기자'는 이제 '청와대 출입기자', 어떤 의미에선 '춘추관 출입기자'가 됐다. 춘추관은 손오공게임 노태우 정부 때 청와대 동쪽에 신축한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프레스센터로 사실상 고립돼 있기 때문이다. 홍보소통수석실 산하 춘추관(구 보도지원비서관실) 직원들을 제외하면, 청와대 다른 직원들과 상주 공간이 다를 뿐 아니라 출입문이 다르고 출입기자들은 청와대 내 다른 구역에 원칙적으로 갈 수 없다. 조순용 전 KBS 기자는 과거 기고에서 춘추관을 “ 한국릴게임 섬”으로 표현했다.
대통령 집무 공간이라는 특수성과 대통령 경호문제, 외교·안보 이슈가 아니더라도 국내외 미칠 파장 등을 고려해 쉽게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는 이유까지 겹쳐 취재가 쉽지 않고 취재하더라도 기사화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미디어오늘은 과거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경험을 담아 남긴 자료를 종합해 부활한 '청와 황금성게임랜드 대 출입기자'에 대해 짐작해보려고 한다.
노무현 정부, 출입기자의 비서실 출입 금지
청와대(대통령실) 출입기자 취재 관행의 큰 틀은 노무현 정부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허원순 한국경제 기자가 2003년 관훈저널에 쓴 글과 신문과방송의 2003년 김만수 신임 춘추관장 인터뷰 등을 보면 김대중 정부때까지는 출입기자들이 바다이야기게임방법 비서실에 방문할 수 있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 초 개방형 브리핑제를 발표했는데 춘추관을 모든 언론사에 개방해 당국자 브리핑을 정례화하는 대신 비서실 방문취재 금지를 주요 내용으로 한다.
▲ 2008년 2월25일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국회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이임하는 노 알라딘릴게임 무현 전 대통령을 배웅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하루 두 차례(오전 11~12시, 오후 4~5시) 비서실 출입 취재가 허용됐다. 취재 장소는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사무실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일(2월25일)부터 금지하면서 사전 약속에 따라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식으로 바꿨다. 김대중 정부 청와대도 브리핑을 강화하겠다면서 기자들의 비서실 출입을 일시적으로, 심지어 물리력(경찰)을 써서 막는 경우가 있었는데 노무현 정부가 본격화한 것이다. 조순용 당시 KBS 정치부장의 관훈저널 글을 보면 하루 2시간'만' 비서실 출입이 가능하다며 다소 비판적으로 당시 분위기를 전했지만 이제 출입기자들의 비서실 출입은 가능하지 않다.
노무현 정부가 브리핑룸을 개방하겠다고 하면서 춘추관 출입매체와 기자 수가 늘었다. 김대중 정부 초인 1999년 중앙언론 25개사 출입기자 30명, 23개 지방언론사 기자 23명, 사진기자 31명이 '섬'에 상주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2003년 2월 기준 언론사 46개사, 출입기자 83명이었는데 같은해 11월에는 언론사 173개, 출입기자 309명으로 늘었다. 브리핑은 매일 오전 9시30분에 보도자료를 배포한 뒤 오전 10시와 오후 3시에 브리핑을 실시해 청와대 홈페이지와 KTV 등으로 생중계했다. 역대 첫 청와대 브리핑 생중계였다.
청와대 출입은 험지?
허원순 기자에 따르면 당시 청와대의 언론관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이 있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2003년 9월25일 언론 관행에 대해 “공무원이 기자만 보면 비실비실하고, 밤 12시에 정치부장을 찾아가 기사를 고쳐달라, 빼달라고 왜 하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같은해 10월31일 춘추관 게시판에는 “창작도 자유다. 자문자답도 자유다”라는 이병완 당시 홍보수석 명의의 방이 붙었다. 한 언론사가 '비서실 조직개편 추진' 기사를 썼는데 이를 부인하는 내용의 청와대 입장이었다. 해당 방을 본 기자들은 홍보수석의 과한 반응에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했고 '청와대의 과잉반응'을 주제로 기사를 쓸지 상의하기도 했다.
며칠뒤인 11월5일 춘추관 기자실에는 또 다른 안내문이 붙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내달(12월) 3일 김대중 도서관 개관 때 만난다는 기사를 쓴 언론사에 3개월 출입정지 조치를 내린다는 내용이었다. 허 기자는 청와대가 엠바고나 오프로 공지한 사안이 아닌 해당 언론사의 특종이었는데 대통령 일정이란 이유로 출입정지 조치를 내렸다고 지적했다. 청와대는 해당 단독보도를 따라 쓴(추종보도) 언론사도 징계조치 하겠다고 했다. 당시 대통령은 개방과 합리를 말했지만 청와대 참모들은 각종 수단을 동원해 기자들을 고립시키고 통제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노무현·이명박 정부 청와대를 출입한 박재훈 MBC 기자는 2013년 '방송기자'에 쓴 기고의 제목은 <'청와대 출입'이라는 험지>다. 해당 글에선 다소 불편할 만한 기사를 썼을 때 청와대의 반응을 전했다. “어제 마각을 드러내던데? 우리 편 맞아?” 등의 반응이다. 박 기자는 “기사가 지적하는 본질적 문제에 주목하지 않고 기사를 쓴 기자의 '성향'을 먼저 살핀다”며 “가뭄에 콩 나듯 하는 비판 보도마저 '너는 누구편이냐'는 편 가르기에 밀려 무시되고 언론이 방기하는 사이, 정권은 국민과의 소통을 뒤로 한 채 그들만의 독주로 달려가기 일쑤였다”고 했다.
▲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 사진=청와대
따라서 청와대 출입기자의 역할은 중요하다. 특히 헌정사상 처음으로 파면당한 박근혜 정부를 돌아보면 더욱 그러했다. 최문선 한국일보 기자가 2017년 관훈저널에 쓴 글을 보면 박근혜씨는 해외 순방을 떠날 때 대통령 전용기 기자석을 '돌았다'고 한다. 순방 성과가 만족스러울 때를 제외하면 기자석에 와서 인사만 했고, 기자들 사이에선 “대통령이 순시 온다”고 표현했다. 언론은 대통령에게 소통을 주문했지만 청와대 전직 참모는 대통령 박씨에게서 “왜 그렇게 기자들 전화를 열심히 받냐”는 핀잔을 들었다고도 전했다. 최 기자는 “청와대는 기사 마감 시간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컨펌'을 중시했다”며 “박 전 대통령은 결정적 고비마다 언론의 쓴소리와 정반대의 선택을 했고 결국 스스로 몰락했다”고 썼다.
문재인 정부 초반의 청와대는 조금 달라졌다. 최혜정 한겨레 기자가 2017년 쓴 신문과방송 글을 보면 정부 출범 직후 청와대 대변인과 사회수석, 국민소통수석 등의 공식 브리핑과 백그라운드 브리핑(백블), 백백블로 이어지는 질의응답이 급증했고 청와대 관계자들도 기자들의 질문을 피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부가 출범한 같은해 5월 문재인 대통령은 세차례 기자회견장을 찾아 인사를 직접 발표하고 질문을 받았는데 이는 박근혜 정부때와 너무 다른 모습이라 “기자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에 최 기자는 “무엇보다 편해진 것은 워낙 브리핑이 많고 내용이 자세해 대통령의 진의를 '상상'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다만 비보도 질의응답이 많고 답변의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았다. 문동성 국민일보 기자는 2017년 관훈저널에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들은 기자들에게 공식 입장 및 추진 정책에 대한 '모범 설명'만 내놓을 뿐 감시와 견제를 위한 취재에는 소극적”이라며 “노무현 정부 '개방형 브리핑 제도' 도입 이후 참모진이 춘추관을 찾지 않는 한 출입기자가 관계자들을 만나기 어려고 풀 기자로 선정돼도 질문을 하거나 다른 사무실을 방문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문 기자는 출입기자들에게 비서동 공개를 제안했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중반 이후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춘추관은 최소한으로만 운영됐고, 정권이 교체됐다.
▲ 문재인 전 대통령. 사진=청와대
청와대 출입기자의 역할을 곱씹어볼 만한 글도 있다. 조순용 KBS 기자(정치부장)의 1999년 관훈저널 기고문이다. “우리 언론은 권력에 비판적 입장을 취하고자 하지만 한편으로는 권력에 대해 약점을 지니고 있다. 그 약점은 과거 군사독재시절, 권력이 언론을 장악하기 위해 만들어준 측면이 강하다. 특히 신문사들의 경영 측면에서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 말이다. 언론사들은 자기 회사와 관련 청와대의 생각은 어떤 것인지, 대통령의 발언에 어떤 숨은 뜻이 있는 것은 아닌지 알고자 한다. 만약 불리한 측면이 있다면 우선적으로 출입기자를 통해 적극적으로 설명하게 된다. 청와대 기자가 취재 이외에 수행해야 하는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의 하나인 것이다.” 조순용 기자는 해당 글을 쓰고 3년 뒤 김대중 정부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갔다.
이때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렀고 사회구조나 권력과 언론의 관계도 변했다. 그러나 권력과 언론의 속성, 더 구체적으로는 권력의 최정점인 청와대의 언론관이나 언론과의 관계가 얼마나 바뀌었을까. 신경렬 SBS 기자는 2013년 '방송기자'에 “좋은 것만 발제하려는 청와대와 뭔가 새로운 것을 찾고 다르게 해석해 보려는 취재 기자와의 실랑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썼다. 개방과 투명을 말하는 이재명 대통령의 청와대 시대는 얼마나 달라질지 지켜볼 일이다.
※참고문헌 조순용 <청와대와 춘추관, 그리고 기자들> 관훈저널 1999년허원순 <청와대가 아닌 '춘추관 출입기자'> 관훈저널 2003년 조동시 <6월초 브리핑룸으로 전환, 비서실 출입 취재 불허-청와대 기자실 개방, 김만수 신임 춘추관장에게 듣는다> 신문과방송 2003년성기철 <개방형 브리핑제가 취재 및 보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석사학위논문 2004년 신경렬 <좋은 청와대 뉴스, 좋은 청와대 출입기자> 방송기자 2013년 박재훈 <'청와대 출입'이라는 험지> 방송기자 2013년 최혜정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새 정부 취재 한달-비정상의 정상화, 왜 이리 낯설죠> 신문과방송 2017년 문동성 <청와대 취재 시스템의 변화와 평가> 관훈저널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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