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현지시간) 이집트 카이로 인근의 피라미드 전경. 정재훈기자 jjhoon@yeongnam.com



"캐시(Cash)로 지불할 수 있나? 카드 단말기가 없으니 현금으로 달라."

20일(현지시간) 이재명 대통령의 이집트 공식방문 일정 중 잠시 일정이 빈 오후시간. 타 기자들과 함께한 '그랜드 이집트 박물관(Grand Egyptian Museum, 이하 GEM)'으로 가는 길은 매우 험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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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사용한 스마트폰 우버 앱의 알림. 스마트폰 화면 캡처.



스마트폰 앱으로 호출한 '우버(UBER)' 기사는 배차가 되자마자 메시지를 보냈다. 카드는 안 된 릴게임손오공 다며 현금을 요구했다. 호출 시스템을 알고 있기에 말도 안되는 요구라 생각하고 취소를 했지만, 십여분간 기다리다 어쩔 수 없이 한 기사의 5배 가까운 폭리(?)를 수용했다. 한화로 6천원 정도의 요금이었지만 실제 지불한 것은 20달러(2만9천원) 였다.

GEM 기자단 숙소에서 차로 30분 거리였다. 카이로의 악명 높은 바다이야기사이트 교통 체증은 물론 창문 틈으로 매케한 매연이 지속해서 들어왔다. 매연으로 인해 다음날까지 목이 아플 정도였다. 신호등과 횡단보도가 없고, 오토바이 등이 끼어들기가 일상인 탓에 일부 기자는 멀미를 호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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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현지시간 이집트 기자지구에서 대이집트박물관으로 이동하던 중 촬영한 도로 풍경. 정재훈기자 jjhoon@yeongnam.com



◆ "당신 대통령 때문에 1시간 대기"… 뜻밖의 '외교적 농담'

GEM은 이집트가 국 오션파라다이스게임 가적 역량을 쏟아부어 20년의 기다림 끝에 지난 1일 개장했다. 이곳은 단일 문명 박물관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온라인 예약은 24시간 전, 클릭 몇 번으로 쉽게 끝났기에 입장도 수월할 줄 알았다. 하지만 진짜 난관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대이집트박물관 전경. 정재훈기자 jjhoon@yeognnam.com



오후 2시20분쯤, 박물관 입구에 도착하니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일반 관람객의 입장이 전면 통제되고 있었다. 보안 요원에게 이유를 묻자 "VIP 방문으로 보안 검색이 강화됐다"는 답이 돌아왔다. 알고 보니 이재명 대통령과 동행한 김혜경 여사가 이집트 영부인과 친교 일정을 위해 방문 중이었다. 뜻하지 않게 대통령실 출입 기자가 영부인의 동선에 갇혀버린 상황.

분명 해당 시간에 공개일정이 없었기에 시간을 낸 것인데(추후 여사 일정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공개됐다)…. 왜 잠시 짬이 났는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다만 영문을 모르는 관광객들 사이에선 작은 소란이 일었다. 1시간 넘게 입장이 지연되자 옆에 서 있던 한 미국인 여성 관람객이 나를 보며 뼈 있는 농담을 던졌다.
"헤이, 당신네 대통령이 와서 우리가 못 들어가고 있잖아. 당신이 대신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니야?"
멋쩍은 웃음으로 사과 아닌 사과를 건넸다. 대통령의 순방이 현지 관광객들에게는 '불편한 이벤트'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현장의 먼지 속에서 체감한 순간이었다. 대기열에서 만난 한국인 관광객들도 다음 일정을 고려해야하는데 어떻게해야할 지 모르겠다며 기자들에게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20일(현지시간) 대이집트박물관 입구의 람세스2세상 모습. 정재훈기자 jjhoon@yeongnam.com



◆ 람세스2세상으로 시작작…5천년을 하루에 담다

결국 기자단은 다시 시내로 이동했다가 돌아오기를 반복, 오후 6시가 다 되어서야 보안 검색대를 통과했다. 폐장까지 남은 시간은 2시간 남짓. 세계 최초로 매달린 형태로 전시되어 기대를 모았던 '행잉 오벨리스크(Hanging Obelisk)'는 아쉽게도 공사 가림막으로 진입할 수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본관 '그랜드 홀'에 들어서자마자 압도적인 위용의 거인이 기자를 맞이했다. 3천200년 전 파라오, 람세스 2세의 거상이다. 추후 검색한 내용이지만 높이 11m, 무게 83t에 달하는 이 거상은 원래 카이로 시내 람세스 광장 한복판에서 매연을 뒤집어쓰고 있었으나, 2006년 이곳으로 옮겨져 박물관의 첫 손님(First Guest)이자 주인이 되었다고 한다.







20일(현지시간) 대이집트 박물관 그랜드스테어케이스. 정재훈기자 jjhoon@yeongnam.com



관람 동선은 마치 고대 신전으로 향하는 순례길 같았다. 왕들의 석상이 도열한 '그랜드 스테어케이스(대계단)'를 따라 오르는데도 제법 시간이 걸렸다. 교과서와 이미지로만 봤던 상형문자가 새겨진 석상과 석관들이 관람객들을 사로잡았다.

이후 6층 높이의 대계단 정상부에 오르자 저 멀리 유리창 밖으로 기자의 피라미드가 그림처럼 걸려 있었다. 과거(유물)와 현재(건축), 영원(피라미드)이 한 앵글에 들어오는 순간이다.







20일(현지시간) 대이집트 박물관의 하이라이트인 황금투탕카멘 전시모습. 정재훈기자 jjhoon@yeongnam.com



이어 박물관의 하이라이트 '투탕카멘 갤러리(07번 장례 섹션)'로 향했다. GEM의 존재 이유이기도 한 이곳은 투탕카멘 무덤에서 발굴된 5천여 점의 유물을 역사상 처음으로 '완전체'로 전시한다. 황금 마스크의 영롱한 빛은 21세기의 조명 기술과 만나 비현실적인 아우라를 뿜어냈다. 4천600년 전 태양을 향한 항해를 꿈꿨던 '쿠푸왕의 배(Solar Boat)' 앞에 섰던 것도 큰 경험이었다.

현지 가이드 책에 따르면 이곳의 유물은 약 10만 점, 전시된 것만 5만여 점이다. 국내에서는 "잠도 안 자고 1분씩만 봐도 다 보는 데 70일이 걸린다"는 내용으로 알려졌다. 2시간 속성 관람은 수박 겉핥기였지만, 그 껍질조차 너무나 달콤하고 웅장했다.
◆ "코리안? 사진 같이 찍어요!"
관람 도중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졌다. 이집트 현지 청소년과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 유물이 아닌 기자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동양인이 신기한 듯 다가와 "셀피(Selfie)?"를 요청했고, 함께 사진을 찍자 아이돌이라도 만난 듯 환호했다. 기자 뿐만 아니라 동행한 타사 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남여 가릴 것 없이 사진을 요청하거나 인사를 건내왔다. 가족 5명과 모두 한명씩 사진을 찍는 일도 있었다.
사실 박시시(Baksheesh)라고 불리는 주요 관광지 주변에서 호객꾼들이나 일부 현지인이 사진을 찍자고 한 뒤, 촬영 후에 팁(돈)을 요구하는 경우라고 긴장했지만 아니었다. 그들은 "고맙다"며 "즐거운 시간 보내라"라고 덕담도 건냈다.







대이집트박물관 7번 갤러리에 위치한 투탕카문 등 장례 관련 전시장 모습. 정재훈기자 jjhoon@yeongnam.com



이집트 기자(Giza) 지구에 산다는 한 대학생 여성은 "이름이 어떻게 되나?" "왜 이집트에 왔냐"고 말하며 이야기하기도 했다. SNS 라이브를 킨 그는 "한국인 친구를 만났다"고 즐거워했다.

부끄럽게 사진을 요구하지 않더라도 "반갑다. 어디서 왔냐?" 묻는 것이 일상이었다. 앞서 기자단을 인솔한 한국문화원 측 현지 수행원에게 들었을 때 "K-팝과 드라마로 시작된 호감이 한국인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친근감으로 확장됐다"는 언급이 이해가 갔다.
모든 기자들이 박물관 안에서만큼은 아이돌 못지않은 환대를 받았기에, 여로모로 한국을 뜻하는 'K'의 존재감이 강하게 느껴졌다.
◆ 택시 기사가 기억하는 '다이구(Daegu)'와 한국
강렬한 인상은 택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박물관을 오갈때 모두 택시 호출이 힘들긴 했지만, 택시 안에서 분명 이집트에서 한국인에 대한 환대를 느낄 수 있었다. 나이 지긋한 기사는 "어디서 왔냐"고 물은 뒤 한국이라고 답하자 "오늘 한국 대통령이 오지 않았느냐"며 아는 체를 했다.
그는 서툰 발음으로 "천안"을 언급하더니, 친구가 살았다고 했다. 이후 서울, 부산을 말했고 "다이구(Daegu), 다이구"를 연발했다. 처음엔 의아했지만,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기억하거나 산업 단지를 언급하는 듯했다. 이어 그는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을 가리키며 "현대, 쌍용, 한국타이어... 코리아 굿(Good)"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자신의 차는 중국차(BYD) 지만 "코리아 넘버원"이라고 거듭 말했다.







20일(현지시간) 대이집트박물관 입구에 마련된 공식 기념품샵. 정재훈기자 jjhoon@yeongnam.com



공식 기념품에서 작은 파라오 모형과 마그넷을 몇개 집어들었다. 공식 기념품 샵의 직원 역시 "자신의 보스는 한국인"이라며 서툰 한국말은 건내기도 했다. 이후 한국 언론들의 기사를 통해 GEM의 공식 기념품점 운영자는 다름 아닌 '뮤지엄'(MUSEEUM)의 공동 설립자인 권재영씨라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출국 전에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던 한국과 이집트의 연결고리가 생각보다 끈끈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짧은 여유시간 후 복귀했을 떄 기자들은 안보실장 브리핑 등으로 다시 대통령의 행보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행한 기자들은 잠시 마주한 5천 년의 시간은 취재 수첩 한구석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이집트인들의 일상 깊숙이 파고든 한국 기업들의 위상, 그리고 지구 반대편에서 온 인사들을 환영하는 소박한 마음. 어쩌면 이날 가장 빛나는 '유물'은 박물관 안의 황금이 아니라, 카이로의 매연 속에서 확인한 양국의 끈끈한 연결고리였을지 모른다.
이집트 카이로에서 글·사진=정재훈 기자
정재훈기자 jjhoon@yeongn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