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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전 서울 중구 필동 남산 자락 ‘한국의집’에 백전노장 판소리 명인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최고 경지에 오른 명창 소리꾼과 명고 북재비들이다. 안숙선(76) 명창은 휠체어에 의지한 채 불편한 몸을 이끌고 참석했다. 단 12명에 불과한 국가무형유산 판소리·고법 예능 보유자들이다. 이들은 6월26일~7월4일 서울 강남구 민속극장 ‘풍류’에서 ‘득음지설’(得音知設)이란 이름으로 모두 다 신한은행 엘리트론 섯 차례 소리판을 펼쳐내는데, 이에 앞서 열린 간담회 자리였다.
“이렇게 선생님들 한자리에서 뵙게 되니, 얼씨구 좋구나~.” 사회를 맡은 국악인 박애리(48)씨는 “판소리 보유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 자체가 처음”이라고 소개했다. 적벽가 보유자 김일구(85) 명창은 “이런 자리가 처음이라 마음이 들떠서인지 간이 벌렁벌렁하요”라고 말해, 웃 일본계금융사 음을 자아냈다. 흥보가 보유자 정순임(83) 명창은 “아마 대한민국 생기고 처음 있는 일일 것”이라며 “이런 공연이 자주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이들 나이의 합이 892살에 이른다.
이번 공연은 1964년 판소리 국가무형유산 지정 60주년을 기념해 국가유산진흥원이 마련한 잔치 마당이다. 수십년 독공(발성 훈련)으로 수련한 명인 대학생소액대출 들이 뽑아내는 농익은 소리로 판소리 다섯 바탕 눈대목을 두루 감상할 기회다. 적벽가 보유자 윤진철(60) 명창은 “음악적·문학적으로 가장 밀도 있게 잘 짜인 대목을 눈대목이라 하는데, 적벽가에선 ‘조자룡 활 쏘는 대목’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흥보가 보유자 이난초(64) 명인은 ‘흥보 박타는 대목’과 ‘제비노정기’를 눈대목으로 선보인다.
1억5000만 스승과 제자가 함께 꾸미는 합동 무대여서 대를 이어 전승되는 판소리 유파의 흐름을 살필 수도 있다. 오는 28일 적벽가 보유자 송순섭(86) 명인과 함께 무대에 오르는 만능 소리꾼 이자람(46)은 “저 역시 보유자 선생님들을 한자리에서 뵙는 게 처음”이라며 “언제 또 이런 의미 있는 공연이 열릴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자람은 동편제 적벽가 이수자이 (주)한국신용평가정보 자 동초제 춘향가 이수자다. 국가무형유산은 보유자, 전승교육사, 이수자 등 3단계 전승 체계로 돼있다.
김홍신(78) 작가가 해설사로 나서는 ‘판소리 사용 설명서’ 형식의 무대란 점도 이번 공연의 특징이다. 김 작가는 “몇시간씩 소리를 해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것을 보면 이분들이 소리에 인생 전체를 걸었다는 걸 알 수 있다”며 “판소리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공연”이라고 ‘강력추천’했다. 김혜정 경인교대 교수는 “악보 없이 입으로 전하고 마음으로 가르친다는 구전심수 방식으로 전승돼온 판소리는 즉흥성과 창의성으로 현장에서 더욱 살아있는 소리로 바뀌는 매력이 있다”며 “같은 바탕이라도 유파에 따라 소리 질감과 농도가 다르다는 점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십년을 하루같이 우리 소리 외길로 내달려온 이들이 풀어내는 사연도 구구했다. 김일구 명인은 “80살 넘어서야 보유자가 됐는데, 한참 힘을 쓸 수 있을 때 지정해줘야 우리 전통음악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을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들 가운데 10명이 2020년 이후에야 보유자로 지정됐다. 대구 태생인 심청가 보유자 김영자(74) 명인은 유일한 영남 출신이다. 김 명인은 “경상도가 고향이라 잘 안 되는 발음 때문에 엄청나게 전라도 말을 연습했다”며 웃었다. 그는 “‘경상도 사람이 무슨 판소리냐’는 말을 가끔 듣는데, 다음 생에 태어나도 판소리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고 말했다.
‘일고수이명창’(一鼓手二名唱)은 뛰어난 명창도 북채를 쥔 고수의 도움 없이는 좋은 무대를 만들 수 없다는 뜻이다. 고법 보유자 김청만 명인은 “판소리 없으면 고법이 없고, 고법 없으면 판소리도 없는 실과 바늘의 관계”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소리를 할 줄은 몰라도 감상하는 수준이 명창 경지에 이른 ‘귀명창’을 얹기도 한다. “판소리는 어느 한순간의 작곡이 아니라 대를 이어 켜켜이 쌓아 올린 소리죠. 쌩쌩하고 기운차게 하는 소리보다 나이 들어 목이 받쳐주지 못해도 곰삭아지고 목이 갈라지면서 더욱 깊이를 드러낼 수 있는데, 이를 알아챌 수 있는 청중이 있어야 합니다.” 고법 보유자 박시양(63) 명인은 “판소리 교육 체계를 갖춰 더 많은 귀명창이 판소리 공연장을 찾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판소리 국가무형유산 지정 60돌을 기념해 판소리·고법 보유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최초로 합동 공연을 펼친다. 왼쪽부터 11일 간담회 사회를 맡은 국악인 박애리씨와 김혜정 교수, 김홍신 작가, 이난초, 김영자, 김일구, 김청만, 정순임, 김수연, 정회석, 윤진철, 박시양 보유자. 국가유산진흥원 제공


“명창과 명고, 귀명창이 함께 판을 이뤄나가는 게 판소리입니다.” 심청가 보유자 정회석(62) 명창이 “오셔서 얼씨구 추임새도 넣으면서 공연을 즐겨달라”고 하자, 사회자 박애리씨는 “명창, 명고 선생님들은 준비가 다 돼 있으니, 귀명창 여러분을 기다리겠다”고 화답했다. 조부 정응민(1896~1964), 부친 정권진(1927~1986) 명인에 이어 보성소리의 맥을 이어가는 정회석 명인은 “어머니가 심청가 보유자셨는데, 심청가를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나한테 효도하면 된다’고 하시더라”며 “아버지는 ‘소릿속을 모르고 죽는 사람들이 제일 불쌍하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고 떠올렸다.
이날 간담회엔 춘향가 보유자 신영희(83) 명창을 제외한 11명이 함께했다. 공연은 오는 12일부터 네이버 예약으로 예매할 수 있으며 관람료는 무료다. 공연 뒤엔 국가유산진흥원 유튜브로 영상을 공개한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