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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은퇴 후, 네팔에서 제2의 경력을 밟을 뻔하였다. 우리나라 대학 약대에서 은퇴한 후 네팔 대학에서 가르치던 한 교수가 롤모델(role model)처럼 보였다.
네팔의 한 의대 관계자와 얘기가 한참을 오갔다. 그러나 마스크를 하루 종일 쓰고 살 정도로 나쁘다는 카트만두의 대기환경과 정정(政情) 불안 등의 소식을 듣고 주춤하게 되었다. 이후 코로나가 세게적으로 대유행하자 없던 일이 되었다.
처음 네팔에 관심이 생겨 네팔 의료상황을 찾아보니, 심각한 눈 감염병 '트라코마'(trac 총급여 homa)가 끝났다는 종결 선언이 주요 뉴스임을 알게 되었다. 트라코마는 클라미디아 트라코마티스(Chlamydia trachomatis)라는 세균에 의해 발생하는 만성 전염성 눈 질병이다.
초기에는 가렵고 눈물을 흘리는 가벼운 증상만 보이지만, 감염이 지속되면 눈꺼풀이 안쪽으로 말리고 속 눈썹이 각막을 자극하여 각막 손상과 함께 결국 실명 상업용 (失明)에 이른다. 항생제가 없던 때는 트라코마에 걸린 이들이 반복적인 감염을 겪으며 실명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다.
주로 감염된 사람의 눈 분비물 또는 코 분비물과의 접촉을 통해 전염된다. 손, 얼굴, 수건, 옷, 파리 등의 매개체를 통해 퍼지니 위생 상태가 좋지 않은 지역에서 어린이들 사이에 쉽게 전파된다.
나폴레옹도 보금자리론 디딤돌대출 괴롭히던 트라코마 퇴치 작전…WHO 'SAFE'
트라코마는 한 때 세상에 널리 퍼진 유행병이었다. 고대 이집트와 중세 유럽, 특히 전쟁, 무역, 이동이 빈번했던 지역에서 유행하였다.
나폴레옹 군대가 이집트 원정 중 트라코마에 걸려 큰 고통을 겪었다는 기록도 있다. 19세기 유럽에서는 산업 혁명과 함께 도시의 위생 상태가 부동산브로커 매우 열악해졌고 트라코마가 대규모로 유행했다.
WHO(세계보건기구)는 트라코마라는 보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SAFE 전략을 수립하고 여러 저개발 국가에서 이를 강력히 추진하였다. SAFE 전략은 Surgery(수술), Antibiotics(항생제), Facial cleanliness(얼굴 청결), Environmental improve 대구은행 본사 ment(환경개선)의 약자이다. WHO의 SAFE 전략은 저개발 국가에서 트라코마 발생률을 줄이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트라코마는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하였으나 위생 상태가 개선된 1970년대 이후 환자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는다. WHO는 1977년, 대한민국에서 트라코마 감염이 종결되었다고 선언했다. 20세기 후반이 되면서 트라코마는 주로 저개발 국가 문제가 되었다.
네팔의 건조하고 먼지가 많은 환경은 이 병의 전파를 부추겼다. 21세기 들어 네팔은 이 SAFE 전략을 국가 보건 정책에 성실하게 반영하였다.
내가 2010년대 중반 네팔 의료상황에 관심을 가진 때에 이미 네팔은 트라코마를 잘 다스리게 되었다는 보고가 계속 나오기 시작하였다. 네팔 보건부는 트라코마 퇴치를 위해 WHO, 국제 트라코마 이니셔티브(initiative), 국제 비정부기구와 협력하여 전국적으로 트라코마 관리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마침내 2018년 네팔은 "트라코마에서 벗어났다"고 선언하게 된다. 1985년도 트라코마 유병률이 약 6.5%이던 국가가 30여 년 지나 이를 퇴치하였으니 모범적인 관리는 칭송받을 만하다.
실명이 무서운 이유…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
아직도 지구상에는 1억 이상의 인구가 트라코마 감염 위험에 처해있다. 트라코마의 관리가 특별히 중요한 이유는 실명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명은 시력을 완전히 상실하거나 시각을 통한 일상생활 대부분의 활동이 불가능해지는 경우를 의미한다.
실명은 불행이다. 우리 시대 고교생들이 영어 공부에 반드시 사용하던 참고서에는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 중 누가 더 불행한가를 설명한 글이 들어 있었다. 그 글에 의하면 시각장애인이 청각장애인보다 불행하다. 혼자 있어도 장애를 느끼기 때문이다. 지금도 공감되는 글이다.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는 감염병으로 한 도시에 집단적인 실명이 초래되는 상황에서 인간들이 드러내는 행동과 심리를 다루었다. 트라코마 유행과는 양상이 다르지만, 실명을 유도하는 유행병이라는 점에서 트라코마와 가장 근접한 상황을 다룬 소설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실명한 사람들은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 하게 되어 상실감과 고립감을 느끼고, 서로 심리적으로 큰 고통을 준다. 인간의 본성이 쉽게 상처받고 나약함을 보여준다.
식량을 확보하려는 몸부림에서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일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 격리된 환경에서 인간들은 문명사회의 규범을 잃고 점차 야만적으로 변한다. 폭력과 착취가 만연하게 되며, 인간 내면에 잠재된 원초적인 본능을 드러낸다.
실명이라는 상태는 인간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무지와 두려움이 커지면서 사람들은 더 극단적인 행동을 취하게 되고, 이는 인간 존재의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반면, 여주인공과 몇몇 인물들은 서로를 돕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위기 속에서도 연대의 힘과 희망을 보여주며, 인간성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한다.
네팔의 대표 홍차, 찌야(chia)
네팔에 관심을 가질 때 나는 네팔 차(茶)에 대해 무지하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네팔도 차의 나라다. 히말라야산맥의 큰 산인 칸첸중가 언저리에는 많은 차 농장이 있다. 이들을 칸첸중가 농장이라 부른다. 농장 중 생산량이 많은 지역이 일람 지역이라 일람 차밭이 칸첸중가 농장을 대표한다. 이 농장들은 해발 2,000미터 부근의 네팔 고지대에 있다.
네팔은 19세기 후반기에 라나 수상이 청나라를 방문하였을 때 청 황제에게서 차나무 씨앗을 선물로 받았다. 이미 중국의 차나무가 외부로 유출된 이후라 청나라 황제가 흔쾌히 씨앗을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씨앗을 가져온 라나 수상은 자신의 매부인 일람 지역 책임자 타파에게 차를 재배하도록 지시하였다. 타파는 이미 중국 차나무를 재배하고 있던 인도의 다즐링에 사람을 보내 차 재배법을 배워 네팔에서 차를 재배하기 시작하였다.
칸첸중가에서 내려오는 깨끗한 물과 시원한 기후는 찻잎이 천천히 자라도록 하여 차에 복합적이고 섬세한 맛을 부여한다. 차 농장들은 유기농 방식으로 차를 재배하며, 수작업으로 찻잎을 따고 가공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유지하고 있어 고품질의 차를 생산한다고 평가받는다.
네팔의 현재 차 생산량은 우리나라의 수십 배에 이른다. 차 생산량 기준으로 세계 15위 정도 된다. 네팔은 이 차나무 잎으로 홍차, 백차, 녹차, 그리고 우롱차를 생산한다.
차 생산 세계 15위 네팔 차, 밖에선 인도 '다즐링 차'로 둔갑하는 이유
네팔 사람들이 가장 즐기는 차는 홍차이다. 그들은 이 홍차를 찌야(chia)라고 부른다. 염소의 젖을 짜서 얻은 우유를 물과 함께 끓이고 여기에 잘게 부순 홍차 잎을 넣어 다시 한번 더 끓여 마신다. 네팔인들은 보통 하루에 다섯 잔 정도의 찌야를 마신다. 대부분 일람에서 생산하므로 일람 티라고도 부른다.
네팔 차는 국내에서 접하기가 어렵다. 국내에서 흔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해 알아보았더니, 몇 년 전까지 수출 물량 대부분을 인도로 보냈고 인도는 질 좋은 네팔 차를 다즐링 차로 둔갑시켜 세계 시장에 판매하였다고 한다.
다즐링은 인도에서 칸첸중가를 바라볼 수 있는 지역이다. 멀리 보이는 칸첸중가 덕에 인도 땅 다즐링이 인기 방문지가 되었다. 중국차를 훔쳐 나온 로버트 포츈이 다즐링에서 차 재배에 성공한 덕에 인도는 질 좋은 차를 생산한다. 게다가 인도가 네팔에서 수입한 차까지 다즐링 차로 둔갑시켜 팔고 있다니 네팔의 기생충처럼 얄밉게 보인다.
네팔 차 맛이 궁금했다. 다즐링 차로 둔갑한 일람치를 이미 마셨을지도 모르지만, 네팔에서 제작한 차로 만든 찌야를 이전에는 마셔보지는 못하였다. 네팔인이 경영하는 음식점에 전화로 청하였더니 흔쾌히 허락하는 답이 왔다. 식당에 들러 찌야를 대접받았다. 생강 한 방울이 포함된 듯 상큼하였다. 절로 "나마스떼"라는 인사가 나왔다.
유영현 원장(오디오칼럼 1+1이야기 https://www.youtube.com/@yhyoo0906)



유영현 원장 (yhyoo@d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