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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수도 타이베이 중심에 자리한 건국고등학교[建國中學]는 대만 최고의 공립 남고다. 많은 대만의 최상위 엘리트는 ‘건국고-국립대만대’로 이어지는 학력을 갖췄다. 학교 인근의 명문 여고인 타이베이 제1여고[台北市立第一女子高級中學]와도 교류가 활발해 두 학교 학생이 졸업 후 ‘파워 커플’이 되는 경우도 많다. 최근 본지와 만난 좡즈쥔 건국고 교장은 “대만의 교육 원칙은 실력 중심의 수월성(秀越性·우수 진행자 인재 집중 육성) 추구”라며 “실력과 무관하게 모든 학생에게 같은 수업을 제공하는 것이 진정한 정의가 아니다”라고 했다.
지금까지 한국 진보 정권의 교육 정책은 ‘평준화’ 원칙을 따랐다. 하지만 2000년 이후 8년을 제외하고 진보 정당인 민진당이 집권 중인 대만은 수준에 따른 맞춤형 교육과 이를 통한 엘리트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김대중 국가 전세자금대출 ·노무현·문재인 정권 등 한국의 진보 정당이 정권을 잡을 때마다 고교 서열화 해소, 대학 입시 3불(본고사, 고교 등급제, 기여입학제 금지) 정책, 외고·자사고·국제고 폐지 추진 등 평준화 기조를 이어간 것과 다른 모습이다.
이런 수월성 교육의 전형을 보여주는 학교가 건국고다. ‘기본학력측정시험’(중학교 졸업 시험)에서 거의 만점을 받은 새희망홀씨대출상환 학생들이 모여 대만의 엘리트로 길러진다. 좡 교장은 “우리는 학생마다 다른 환경과 학습 방식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출발한다”며 “어차피 대학이 평준화돼 있지 않은데, 학생 수준에 따라 차별화된 교육을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라고 했다. 건국고는 세계에서 올림피아드(학문 경시대회) 수상자가 가장 많은 학교에 올라 있다. 졸업생 약 900명 중 400 모기지회사 명 정도가 대만대에 진학하고, 약 70%가 대만대를 포함한 ‘톱5’ 대학에 합격한다.
건국고에서 학업 성취도가 높은 학생은 수업 참여 의무가 면제된다. 자율 학습을 하면 된다. 예를 들어 고교 수학 교과과정을 이미 마쳤다고 인정되는 학생은 수학 수업을 빠지고 도서관에서 다른 과목을 공부할 수 있다. 이 제도를 활용하는 학생이 200명 정도 할부차량대출 (전교생은 약 2700명)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대만대에서 수업을 들을 수도 있다. 좡 교장은 “우리 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은 이미 학업 능력이 입증된 학생들이기에 성적만 좋은 사람이 아닌, ‘다리 네 개짜리 책상’ 같은 전방위로 뛰어난 인재로 키우려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픽=양진경


실제로 건국고 출신은 이미 대만 사회 지도자 계층을 장악하고 있다. 민진당 소속인 대만 총통 라이칭더, 국민당 주석 주리룬, 민중당 주석 황궈창 등 3대 정당 수장 모두가 건국고 출신이다. 민진당이 2000년 배출한 첫 총통인 천수이볜 또한 건국고 졸업생이었다. 기술·과학계에선 대만 국립 학술원인 ‘중앙연구원’ 원장(라이충즈),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 TSMC 마크 리우 전 회장 등 핵심 인물들이 이 학교를 나왔다.
대만 정부가 첨단 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가운데 이공계 인재를 공급할 ‘명문 공업고등학교·과학기술대’ 경로도 별도로 돌아가고 있다. 예를 들어 본지가 최근 방문한 대만 중부 타이중의 공립 ‘타이중공고(臺中高工)’는 대만 8대 명문 공고 중 하나다. 재학생은 3000명에 달하고, 졸업생의 85%는 대만 4대 명문 과기대에 진학한다. 공고를 나와야 과학기술대(17곳)에 들어갈 자격을 얻기 때문에 최상위권 학생들이 명문 공고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 학교를 졸업했다는 황상위 교장은 “대만 첨단 산업을 우리 같은 명문 공고가 지탱한다는 사명감을 교사와 학생이 갖고 있다. 이공계 엘리트 육성이 우리 학교의 목표”라고 했다.



대만 타이중공고(臺中高工)의 황상위 교장이 학교에 걸린 액자에 적힌 '선현여능(選賢與能)'이란 문구를 가리키고 있다. 공자의 ‘예기(禮記)’에 나오는 말로 사심을 갖지 않고 오로지 현(賢)과 능(能)을 잣대로 지도자를 골라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타이중공고는 대만 8대 명문 공고 중 하나로, 재학생이 3000명에 달한다. 졸업생의 약 85%가 주요 과기대학에 진학한다./타이베이=이벌찬 특파원


타이중공고는 AI 교육을 대만 고등학교 중에 가장 먼저 도입했다. 대만 1위 반도체 기업 TSMC의 공장 운용 수요에 맞춰 ‘에어컨 전공’을 개설하고 ‘클린룸’을 관리할 전문 인력도 양성 중이다. 공고 1층의 연구센터는 대만 교육부가 짓고 학교에 위탁 관리를 맡긴 곳으로, 기기 설비 가격만 23억원이 넘는다. 이런 식으로 교육부가 학교 안에 만들어준 첨단 연구 시설이 세 곳, 시(市) 정부가 설립한 실습 시설이 두 곳 들어섰다. ‘이공계 엘리트’를 더 빨리 육성하기 위해 대만 정부는 최근 ‘3+4 시스템’이라고 부르는, 이공계 조기 교육 프로그램도 도입했다. 중학생 중 우수 학생을 선발해 고등학교 3년과 과기대 4년을 연계하는 형태다. 황 교장은 “출생률이 낮아지는 가운데 실용주의와 부모들의 교육열이 맞물리며 이공계 특화 교육의 수준이 계속 올라가고 있다”고 했다.
대만에선 명문 학교들이 사립고와 사교육 시장의 팽창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한다는 인식도 있다. 건국고 좡 교장은 “공교육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그 공백을 메우는 것은 결국 부모의 재력”이라며 “고등학교 평준화가 불평등을 줄인다고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라고 했다. 타이중공고의 한 교사는 “우리 학교의 교사들은 대부분 이공계 석·박사 출신으로 다른 나라에선 고등학교가 아니라 대학에서 가르칠 수 있는 인재들”이라며 “공고 학생들 입장에서는 입학을 하기만 하면, 사교육으로 얻을 수 없는 양질의 교육을 받는 셈”이라고 했다.
☞대만 건국고등학교(建國高級中學)
대만 타이베이 중심부에 위치한 최고의 공립 남자 고등학교. 일제강점기였던 1922년 일본인이 설립한 ‘타이베이 제1고등중학교’가 전신이다. 상위 1% 학생들이 입학하며, 수월성 교육을 지향한다. ‘건국고·국립대만대’는 대만 엘리트 코스의 전형으로 인식되고 있고, 졸업생들의 대만 정치·경제 영향력은 강력하다. 라이칭더 대만 총통과 천수이볜 전 총통 등 대만 지도자 상당수가 건국고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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