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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 기간, 영화인들에게 유명한 어느 술집을 찾았다가 한 독립영화 제작자 주선으로 초면인 이들과 합석하게 되었다. 그중 하나가 제가 서울에서 독립서점을 운영한다 하였다.
명함에 적힌 글을 보니 '시네필 책방'이라는데, 영화와 책을 모두 아끼는 내가 찾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게 서울로 돌아와 그가 운영한다는 서점에 이르렀다. 그런데 웬걸, 문이 굳게 잠겨 있는 것이다(시네필Cinephile은 영화(Cinéma)와 사랑(Phile)의 합성어로, 영화애호가 또는 영화광을 뜻한다).
같은 서울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사는 서울 서쪽에서 편도로만 1시간30분은 족히 드는 먼 곳이다. 서울 중랑구에 있는 경의중앙선 중랑역, 한산한 단박대출 주택가에 간판도 없는 작은 가게 코프키노가 있다. 전주국제영화제가 끝난 뒤 곧장 찾았을 적엔 헛걸음을 한 이곳을, 한 달여가 흐른 6월 12일 영업시간이 되자마자 다시 찾았다.
과연 시네필 책방이라 이름붙일 만하다. 전면 유리로 된 창에는 포스터 두 개가 나란히 붙었는데, 알베르트 세라의 <고독의 오후>와 소마이 신지의 <태풍클럽> 포스터 채권원금 다. 아는 이는 알겠으나 모르는 이가 훨씬 더 많을 포스터 두 개를 간판을 갈음하여 붙여둔 코프키노의 성향이 어떠한지를 단박에 짐작한다.
'시네필 책방' 표방하는 중화동 작은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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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프키노 따로 간판을 달지 못한 가게, 창에 포스터 두 개를 붙여 두어 눈길을 끈다.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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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는 더 보편적이다. 안쪽엔 주인장이 쓰는 책상과 차가 올려진 탁자가 있고, 나머지 세 면을 따라 책장과 각종 포스터, 영화와 얽힌 물건들, 앉아서 책을 읽을 의자며 테이블이 놓여 있다. 결코 넓지 않은 공간을 나름 세심히 꾸민 이곳을 영화팬이라면 흐뭇하게 구경할 밖에 없는 것인데, 국내외 유명 감독과 배우, 평론가 거치 들의 친필 사인이 든 물건들이 주인장의 내력을 알게 만든다.
<미키 17> 포스터가 든 액자 앞 놓인 의자 위엔 원작 소설을 포함한 관련 서적들이 놓여 있어 독립서점 특유의 소소한 기획처럼 보이고, 반대편 <파수꾼>과 <봄날은 간다> 포스터 앞엔 마티아스 피녜이로의 사인이 든 책자부터 한강과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김지운의 <장화, 홍련> 각본집, 에릭 로메르의 원서 따위가 누워 손님을 맞이한다. 나는 주인장에게 가장 인상적으로 본 책이 뭐냐 물어 영화감독 구로사와 기요시가 쓴 <구로사와 기요시, 21세기의 영화를 말하다>를 구매하기로 한다.
주인장이 계산에 한동안 애를 먹기에 몇 마디 물으니, 요새 코프키노가 서점보다도 출판사로 더 기능하고 있어서라는 답이 들어온다. 지난 1월 개업 뒤 찾아오는 이가 조금씩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책을 팔아 공간을 유지할 만큼 수익이 나지는 않는 모양이다.
그 대신, 인근 시네필들이 마음을 나누는 거점으로 기능하고, 한편으로 벌써 두 권의 책을 기획해 출간한 출판사 본진의 역할을 겸한다니 나는 문득 그 현주소를 짚어보고 싶어졌다. 그리하여 그대로 반나절 동안 코프키노 낮은 의자에 몸을 붙인 채 <마티아스 피녜이로: 방랑하는 영화, 모험하는 영화>를 읽고 일어선 것이다(관련기사 보기).
책을 읽는 네 시간 동안 나는 결심했다. 이곳 코프키노의 걸음을 누군가는 응원하도록 해야겠다고, 이런 도전은 한국사회, 나아가 한국 영화계에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지니 말이다. 귀한 노력이 마땅한 알아봄에 닿게 하기 위하여서 나는 '김성호의 바로여기' 12번째 편으로 시네필의 책방이자 아트하우스 영화 관련 출판사 코프키노를 소개한다.
"'우리는 영화를 위한 집'이란 말 많이 떠올렸어요"
▲ 강탄우 코프키노에 대해 설명 중인 강탄우 대표
ⓒ 김성호
코프키노를 운영하는 건 20대 청년 강탄우다.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상경한 지 4년 차, 에무시네마 인턴 코디네이터로 반년 간 근무하다 퇴사해 이곳을 차렸다 했다.
독립서점도 그렇고, 코프키노가 집중하는 아트하우스 영화, 출판사 등 모두가 결코 좋지 못한 시기다. 기존 운영하던 서점주와 출판사, 영화업자도 사업을 축소하거나 폐업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도무지 시장이 보이지 않는 판 위에 강탄우는 어째서 발을 들이기로 결정했을까.
"작년 여름, 해방촌에 있는 독립 서점에 놀러 갔었어요. 여러 곳을 둘러보며 책도 한 권 샀는데요. 문득 '왜 우리 동네엔 이런 곳이 없지?'하는 물음이 들었죠. 그 생각이 '그럼 내가 한번 해볼까?'라는 걸로 이어졌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비전만 가지고 있었는데, '책'이라는 키워드와 만나면서 그 비전이 뾰족해지는 걸 느꼈어요. 시네필 책방을 차려서, 영화에 관한 책을 구비하고, 영화에 관한 책을 만들고,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도록 하자. 책은 영화에 비하면 규모가 작으니까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겠다고 판단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작년 연말에 퇴사한 뒤 바로 책방을 차리고 출판 준비를 했습니다."
영화와 책의 만남이 시네필 책방이라는 특수한 사례로 이어졌다. 세계적 영화제가 열리는 베를린이나 칸, 베니스 같은 곳이라면 시네필 책방이 그리 새롭지 않을 수 있겠다. 그러나 한국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부산과 전주 같은 규모 있는 도시에도 영화, 그것도 소위 아트하우스 영화라 불리는 예술영화며 독립영화를 콘텐츠로 삼는 공간이 드문 것이 사실이다. 서울도 마찬가지, 풍요 속의 빈곤을 보여주는 이 납작한 도시 위에서 코프키노가 설 자리가 분명히 있다고 나는 믿는다.
"다른 독립서점이 '책'을 위한 공간이라면, 코프키노는 '영화'를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지난해 <키노 시네필>에서 정성일 평론가가 '우리는 영화를 위한 집이다'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처음 코프키노를 구상할 때 가장 많이 떠올렸던 말입니다. 큐레이션 하는 책들도 영화를 염두에 두고 고르고, 영화 이론 비평서와 영화감독 에세이, 영화 원작 소설, 각본집을 최우선으로 들여오죠. 물론 꼭 영화와 관련이 없더라도 좋은 관객이 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라고 판단하면 가져오고 있습니다."
그저 책을 팔고 출판을 준비하는 사무실로만 기능하지 않는다. 코프키노는 그 이상을 바란다. 제작부터 배급, 상영과 담론형성에 이르기까지 협동과 협력의 예술이라고도 불리는 영화를 주로 다루는 코프키노가 아닌가. 강탄우는 코프키노의 지향이 사람과 만남에 있다고 말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날 수 있는 정기적인 공간을 지향합니다. 제가 극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오프라인 공간이라는 점 때문인데요. 특히 '시네필' 책방이라고 명명한 이유도 비슷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길 희망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달마다 '이달의 도서'를 정해서 독서 모임을 열고, 영화 글쓰기 모임, 최근엔 '전주국제영화제 다녀온 사람들 모임'을 열기도 했어요."
코프키노를 가득 채운 아기자기한 소품들, 그중에서도 영화인들의 사인 얘기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아끼는 게 무엇인지, 공간을 찾는 이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물건들을 물었다.
"역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게 싸인 받은 < E.T > 포스터입니다. 재작년 2월에 혼자 독일 여행을 갔었는데 베를린에는 오래된 영화 포스터를 파는 가게가 있어요. 개봉 당시 극장에 걸던 대형 포스터를 살 수 있는 곳이에요. 마침, 제가 방문한 해에 베를린 영화제가 스필버그에게 공로상을 수여했어요. 스필버그 회고전도 진행한 덕분에 저는 베를린에서 < E.T >를 난생처음 봤답니다. 그리고 그 포스터 가게에서 < E.T > 대형 포스터를 사고, 사인을 받았어요. 나중에 제가 죽으면 어디 박물관에 기증해야겠다고까지 생각해요.
이것 말고도 톰 크루즈, 브래드 피트, 탕웨이, 봉준호, 허준호, 하마구치 류스케, 구로사와 기요시, 크리스티안 페촐트, 레오스 카락스, 차이밍량 등 다양한 영화인들의 사인이 모여 있습니다. 코프키노에 오시는 분들께 이 애장품들에 대해 도슨트처럼 설명해 드릴 수도 있어요."
"영화를 포기하지 말아요"... 해외 영화제 함께 갔으면
어느덧 반년이 됐다. 서점을 열고 기억에 남는 순간도 적지 않았을 테다.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 순간을 묻자 강탄우가 고민 끝에 답한다.
"첫 영화 글쓰기 모임을 했던 날이 생각나요. <더 폴: 디렉터스 컷>에 대한 글쓰기 모임이었는데, 딱 한 분만 신청해서 오셨어요. 코프키노에 아직 프린트가 없어서 근처 복사가게에 가서 글을 출력해야 했죠. 근데 예상보다 모임 참가자분이 훨씬 일찍 오셨고, 예상치 못하게 비도 억수같이 내렸어요. 비를 뚫고 가서 글을 출력해서 종이가 젖을까봐 겉옷 안에 글을 품고 뛰어왔죠. 결국 초면인 손님 앞에서 쫄딱 젖은 채 모임을 진행했는데요. 소동에도 불구하고 그날 뜻깊은 대화를 많이 나눠서인지 무척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누군가에겐 겨우 반년일지 모르겠다. 세상 물정 모르는 이십대 청년이 겨우 반년 간 부딪혀 무얼 알겠느냐고, 혹은 아직 어려서 가능한 객기이며 치기라고도 폄훼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또 코프키노가 매일 전력으로 세상과 부닥치고 있다는 사실일 테다.
그를 둘러싼 상황은 결코 만만치 않다. 예술영화, 그중에서도 한국 독립영화 시장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모두가 그를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인 양 받아들인다. 영화가 아니라도 콘텐츠는 범람하고, 영화가 더는 세련되거나 힙하지 않다고 자조하는 목소리를 숱하게 듣는다.
집을 나가 극장을 찾는 건 불편한 일이고, 극장 안에 두 시간 앉아 있는 것도 부담스럽다 말하는 이가 널려 있다. 세상은 변화하고 시장은 좁아든다. 그러나 누군가는 사라지고 부서지려는 것을 지탱하려는 노력을 들이는 것이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세계가 이대로 침몰해서는 안 된다고 양팔 벌려 막아서는 이들이 이 세상에 몇은 남아 있다.
"재작년 <클로즈 유어 아이즈>를 봤던 게 떠오르네요. 마지막 장면이 폐업한 영화관에서 펼쳐지는데요. 코로나 직후여서 정말 솟아날 구멍도 안 보이던 시기라, '망한 영화관'이라는 엔딩이 너무 남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반면 작년엔 아트하우스 영화가 가능성을 보여준 해라고 생각합니다. 예상치 못한 영화들이 관객의 지지를 받고 돌풍을 일으켰죠. 결국 영화를 살리는 건 기업의 자본보다도 관객의 지지인 것 같습니다.
염세적으로 말하자면, 코프키노도 하루하루가 존폐의 기로입니다. 제가 놓아버리면 끝나버리는 일이니까요. 이번 전주영화제에 가서 개막작 <콘티넨탈 '25>를 보고 배우님께 사인을 요청했는데, 'Don't give up on Cinema'라고 적어주셨어요. 포기하지 않는 젊은 시네필들이 똘똘 뭉친다면 버텨낼 수 있지 않을까요."
인터뷰의 끝, 마지막으로 코프키노의 목표를 물었다.
"계절에 책 한 권씩 내는 걸 목표로 하고 있어요. 이번 여름엔 <아트 호러>, 가을에서 겨울 넘어갈 때쯤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에 관한 책을 만들고 싶어요. 그럼 맘 편히 한 해를 끝낼 수 있겠네요. <아트 호러> 출간과 함께 '로버트 에거스 미니 기획전'도 준비 중입니다. 만약 펀딩을 초과 달성해서 여유가 생긴다면, 에거스 영화 외에 접하기 어려웠던 다른 호러 영화들도 수급해서 상영하고 싶어요.
그리고 내년 2월엔 베를린 영화제에 가고 싶어요. 코프키노와 함께 베를린 영화제에 가고 싶은 시네필들을 모집해서, 마치 코프키노의 가이드 투어처럼 해외 영화제에 참석하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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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 기간, 영화인들에게 유명한 어느 술집을 찾았다가 한 독립영화 제작자 주선으로 초면인 이들과 합석하게 되었다. 그중 하나가 제가 서울에서 독립서점을 운영한다 하였다.
명함에 적힌 글을 보니 '시네필 책방'이라는데, 영화와 책을 모두 아끼는 내가 찾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게 서울로 돌아와 그가 운영한다는 서점에 이르렀다. 그런데 웬걸, 문이 굳게 잠겨 있는 것이다(시네필Cinephile은 영화(Cinéma)와 사랑(Phile)의 합성어로, 영화애호가 또는 영화광을 뜻한다).
같은 서울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사는 서울 서쪽에서 편도로만 1시간30분은 족히 드는 먼 곳이다. 서울 중랑구에 있는 경의중앙선 중랑역, 한산한 단박대출 주택가에 간판도 없는 작은 가게 코프키노가 있다. 전주국제영화제가 끝난 뒤 곧장 찾았을 적엔 헛걸음을 한 이곳을, 한 달여가 흐른 6월 12일 영업시간이 되자마자 다시 찾았다.
과연 시네필 책방이라 이름붙일 만하다. 전면 유리로 된 창에는 포스터 두 개가 나란히 붙었는데, 알베르트 세라의 <고독의 오후>와 소마이 신지의 <태풍클럽> 포스터 채권원금 다. 아는 이는 알겠으나 모르는 이가 훨씬 더 많을 포스터 두 개를 간판을 갈음하여 붙여둔 코프키노의 성향이 어떠한지를 단박에 짐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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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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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는 더 보편적이다. 안쪽엔 주인장이 쓰는 책상과 차가 올려진 탁자가 있고, 나머지 세 면을 따라 책장과 각종 포스터, 영화와 얽힌 물건들, 앉아서 책을 읽을 의자며 테이블이 놓여 있다. 결코 넓지 않은 공간을 나름 세심히 꾸민 이곳을 영화팬이라면 흐뭇하게 구경할 밖에 없는 것인데, 국내외 유명 감독과 배우, 평론가 거치 들의 친필 사인이 든 물건들이 주인장의 내력을 알게 만든다.
<미키 17> 포스터가 든 액자 앞 놓인 의자 위엔 원작 소설을 포함한 관련 서적들이 놓여 있어 독립서점 특유의 소소한 기획처럼 보이고, 반대편 <파수꾼>과 <봄날은 간다> 포스터 앞엔 마티아스 피녜이로의 사인이 든 책자부터 한강과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김지운의 <장화, 홍련> 각본집, 에릭 로메르의 원서 따위가 누워 손님을 맞이한다. 나는 주인장에게 가장 인상적으로 본 책이 뭐냐 물어 영화감독 구로사와 기요시가 쓴 <구로사와 기요시, 21세기의 영화를 말하다>를 구매하기로 한다.
주인장이 계산에 한동안 애를 먹기에 몇 마디 물으니, 요새 코프키노가 서점보다도 출판사로 더 기능하고 있어서라는 답이 들어온다. 지난 1월 개업 뒤 찾아오는 이가 조금씩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책을 팔아 공간을 유지할 만큼 수익이 나지는 않는 모양이다.
그 대신, 인근 시네필들이 마음을 나누는 거점으로 기능하고, 한편으로 벌써 두 권의 책을 기획해 출간한 출판사 본진의 역할을 겸한다니 나는 문득 그 현주소를 짚어보고 싶어졌다. 그리하여 그대로 반나절 동안 코프키노 낮은 의자에 몸을 붙인 채 <마티아스 피녜이로: 방랑하는 영화, 모험하는 영화>를 읽고 일어선 것이다(관련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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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탄우 코프키노에 대해 설명 중인 강탄우 대표
ⓒ 김성호
코프키노를 운영하는 건 20대 청년 강탄우다.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상경한 지 4년 차, 에무시네마 인턴 코디네이터로 반년 간 근무하다 퇴사해 이곳을 차렸다 했다.
독립서점도 그렇고, 코프키노가 집중하는 아트하우스 영화, 출판사 등 모두가 결코 좋지 못한 시기다. 기존 운영하던 서점주와 출판사, 영화업자도 사업을 축소하거나 폐업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도무지 시장이 보이지 않는 판 위에 강탄우는 어째서 발을 들이기로 결정했을까.
"작년 여름, 해방촌에 있는 독립 서점에 놀러 갔었어요. 여러 곳을 둘러보며 책도 한 권 샀는데요. 문득 '왜 우리 동네엔 이런 곳이 없지?'하는 물음이 들었죠. 그 생각이 '그럼 내가 한번 해볼까?'라는 걸로 이어졌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비전만 가지고 있었는데, '책'이라는 키워드와 만나면서 그 비전이 뾰족해지는 걸 느꼈어요. 시네필 책방을 차려서, 영화에 관한 책을 구비하고, 영화에 관한 책을 만들고,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도록 하자. 책은 영화에 비하면 규모가 작으니까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겠다고 판단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작년 연말에 퇴사한 뒤 바로 책방을 차리고 출판 준비를 했습니다."
영화와 책의 만남이 시네필 책방이라는 특수한 사례로 이어졌다. 세계적 영화제가 열리는 베를린이나 칸, 베니스 같은 곳이라면 시네필 책방이 그리 새롭지 않을 수 있겠다. 그러나 한국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부산과 전주 같은 규모 있는 도시에도 영화, 그것도 소위 아트하우스 영화라 불리는 예술영화며 독립영화를 콘텐츠로 삼는 공간이 드문 것이 사실이다. 서울도 마찬가지, 풍요 속의 빈곤을 보여주는 이 납작한 도시 위에서 코프키노가 설 자리가 분명히 있다고 나는 믿는다.
"다른 독립서점이 '책'을 위한 공간이라면, 코프키노는 '영화'를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지난해 <키노 시네필>에서 정성일 평론가가 '우리는 영화를 위한 집이다'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처음 코프키노를 구상할 때 가장 많이 떠올렸던 말입니다. 큐레이션 하는 책들도 영화를 염두에 두고 고르고, 영화 이론 비평서와 영화감독 에세이, 영화 원작 소설, 각본집을 최우선으로 들여오죠. 물론 꼭 영화와 관련이 없더라도 좋은 관객이 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라고 판단하면 가져오고 있습니다."
그저 책을 팔고 출판을 준비하는 사무실로만 기능하지 않는다. 코프키노는 그 이상을 바란다. 제작부터 배급, 상영과 담론형성에 이르기까지 협동과 협력의 예술이라고도 불리는 영화를 주로 다루는 코프키노가 아닌가. 강탄우는 코프키노의 지향이 사람과 만남에 있다고 말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날 수 있는 정기적인 공간을 지향합니다. 제가 극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오프라인 공간이라는 점 때문인데요. 특히 '시네필' 책방이라고 명명한 이유도 비슷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길 희망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달마다 '이달의 도서'를 정해서 독서 모임을 열고, 영화 글쓰기 모임, 최근엔 '전주국제영화제 다녀온 사람들 모임'을 열기도 했어요."
코프키노를 가득 채운 아기자기한 소품들, 그중에서도 영화인들의 사인 얘기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아끼는 게 무엇인지, 공간을 찾는 이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물건들을 물었다.
"역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게 싸인 받은 < E.T > 포스터입니다. 재작년 2월에 혼자 독일 여행을 갔었는데 베를린에는 오래된 영화 포스터를 파는 가게가 있어요. 개봉 당시 극장에 걸던 대형 포스터를 살 수 있는 곳이에요. 마침, 제가 방문한 해에 베를린 영화제가 스필버그에게 공로상을 수여했어요. 스필버그 회고전도 진행한 덕분에 저는 베를린에서 < E.T >를 난생처음 봤답니다. 그리고 그 포스터 가게에서 < E.T > 대형 포스터를 사고, 사인을 받았어요. 나중에 제가 죽으면 어디 박물관에 기증해야겠다고까지 생각해요.
이것 말고도 톰 크루즈, 브래드 피트, 탕웨이, 봉준호, 허준호, 하마구치 류스케, 구로사와 기요시, 크리스티안 페촐트, 레오스 카락스, 차이밍량 등 다양한 영화인들의 사인이 모여 있습니다. 코프키노에 오시는 분들께 이 애장품들에 대해 도슨트처럼 설명해 드릴 수도 있어요."
"영화를 포기하지 말아요"... 해외 영화제 함께 갔으면
어느덧 반년이 됐다. 서점을 열고 기억에 남는 순간도 적지 않았을 테다.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 순간을 묻자 강탄우가 고민 끝에 답한다.
"첫 영화 글쓰기 모임을 했던 날이 생각나요. <더 폴: 디렉터스 컷>에 대한 글쓰기 모임이었는데, 딱 한 분만 신청해서 오셨어요. 코프키노에 아직 프린트가 없어서 근처 복사가게에 가서 글을 출력해야 했죠. 근데 예상보다 모임 참가자분이 훨씬 일찍 오셨고, 예상치 못하게 비도 억수같이 내렸어요. 비를 뚫고 가서 글을 출력해서 종이가 젖을까봐 겉옷 안에 글을 품고 뛰어왔죠. 결국 초면인 손님 앞에서 쫄딱 젖은 채 모임을 진행했는데요. 소동에도 불구하고 그날 뜻깊은 대화를 많이 나눠서인지 무척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누군가에겐 겨우 반년일지 모르겠다. 세상 물정 모르는 이십대 청년이 겨우 반년 간 부딪혀 무얼 알겠느냐고, 혹은 아직 어려서 가능한 객기이며 치기라고도 폄훼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또 코프키노가 매일 전력으로 세상과 부닥치고 있다는 사실일 테다.
그를 둘러싼 상황은 결코 만만치 않다. 예술영화, 그중에서도 한국 독립영화 시장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모두가 그를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인 양 받아들인다. 영화가 아니라도 콘텐츠는 범람하고, 영화가 더는 세련되거나 힙하지 않다고 자조하는 목소리를 숱하게 듣는다.
집을 나가 극장을 찾는 건 불편한 일이고, 극장 안에 두 시간 앉아 있는 것도 부담스럽다 말하는 이가 널려 있다. 세상은 변화하고 시장은 좁아든다. 그러나 누군가는 사라지고 부서지려는 것을 지탱하려는 노력을 들이는 것이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세계가 이대로 침몰해서는 안 된다고 양팔 벌려 막아서는 이들이 이 세상에 몇은 남아 있다.
"재작년 <클로즈 유어 아이즈>를 봤던 게 떠오르네요. 마지막 장면이 폐업한 영화관에서 펼쳐지는데요. 코로나 직후여서 정말 솟아날 구멍도 안 보이던 시기라, '망한 영화관'이라는 엔딩이 너무 남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반면 작년엔 아트하우스 영화가 가능성을 보여준 해라고 생각합니다. 예상치 못한 영화들이 관객의 지지를 받고 돌풍을 일으켰죠. 결국 영화를 살리는 건 기업의 자본보다도 관객의 지지인 것 같습니다.
염세적으로 말하자면, 코프키노도 하루하루가 존폐의 기로입니다. 제가 놓아버리면 끝나버리는 일이니까요. 이번 전주영화제에 가서 개막작 <콘티넨탈 '25>를 보고 배우님께 사인을 요청했는데, 'Don't give up on Cinema'라고 적어주셨어요. 포기하지 않는 젊은 시네필들이 똘똘 뭉친다면 버텨낼 수 있지 않을까요."
인터뷰의 끝, 마지막으로 코프키노의 목표를 물었다.
"계절에 책 한 권씩 내는 걸 목표로 하고 있어요. 이번 여름엔 <아트 호러>, 가을에서 겨울 넘어갈 때쯤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에 관한 책을 만들고 싶어요. 그럼 맘 편히 한 해를 끝낼 수 있겠네요. <아트 호러> 출간과 함께 '로버트 에거스 미니 기획전'도 준비 중입니다. 만약 펀딩을 초과 달성해서 여유가 생긴다면, 에거스 영화 외에 접하기 어려웠던 다른 호러 영화들도 수급해서 상영하고 싶어요.
그리고 내년 2월엔 베를린 영화제에 가고 싶어요. 코프키노와 함께 베를린 영화제에 가고 싶은 시네필들을 모집해서, 마치 코프키노의 가이드 투어처럼 해외 영화제에 참석하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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