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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물론이고 많은 국민을 골치 아프게 했던 외교 일정이 무사히 끝났다. 8월 25일(미국 현지시각)에 열린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을 두고 하는 말이다. 두 지도자의 첫 만남은 동맹의 현대화와 경제통상 등 만만치 않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북미정상회담에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김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 국무위원장과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그와의 재회를 원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었지만, 이렇다 할 주목을 끌지는 못했다. 그 인천취업알선 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이 대통령은 모두 발언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피스 메이커”로 치켜세우면서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한반도에도 평화를 만들어달라”며 김 위원장과의 재회를 요청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안에 그를 만나고 싶다”며 화답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만남을 요청한 지도자는 “이 대통령이 유일했다”고 우체국 적금 말했는데, 이는 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취향을 정확히 짚어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미동맹의 ‘공동의 적’은 조선이라고 일컬어져왔는데, 그 조선 지도자의 회담 염원이 한미 두 정상의 ‘긍정적인 케미’를 만드는 데 기여한 셈이다.
그렇다면 올해 안에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은 있을까? 일단 이재명 정부는 10월 말에 경주에서 열리는 국가대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기회의 공간으로 활용할 뜻을 내비쳤다. 이와 관련해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이 비공개 회담에서 두 정상이 나눴다고 밝힌 대화 내용은 이랬다.
“이재명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APEC에 초청했고 ‘가능하다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만남도 추진해보자’고 건의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매 대출신용불량 우 슬기로운 제안이다’라고 평가하면서 이 대통령의 제안을 여러 차례 치켜세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APEC-북미정상회담 연계 추진이 자충수가 될 우려마저 존재한다. 일단 김 위원장이 APEC 회의에 참석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조선이 회원국이 아닌 다자 회담에, 그것도 조선이 “적대적 국가”로 간주하는 한 할것같습니다 국에서 열리는 행사에 최고 지도자가 참석한다는 것은 연목구어와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 외교에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다. APEC을 계기로 김 위원장과의 만남을 기대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이게 무산될 경우 APEC 참석 동기가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떠올려볼 수 있는 다른 시나리오는 있다. ‘2019년 6월 어게인’이 바로 그것이다. 2019년 2월 2차 북미정상회담이 ‘하노이 노딜’로 끝나면서 급전직하했던 북미관계는 한 달 후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보낸 ‘안부’ 친서, 80일 후에 ‘특별한 우정’을 강조한 김 위원장의 답장, 이틀 후 ‘재회를 원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답장 등 친서 교환이 이뤄지면서 반전의 기운이 싹트고 있었다. 급기야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 오사카에서 서울로 출발하기 직전에 “나는 비무장지대(DMZ)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 악수를 나누고 인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트위트를 날렸다. 이에 김 위원장이 호응하면서 6월 30일에 ‘판문점 번개팅’이 성사된 것이다.
이를 기억하고 있을 트럼프 대통령이 APEC 정상회의를 전후해 김 위원장에게 유사한 제안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당시 상황과 크게 달라진 점들이 있다. 그땐 두 정상이 친서를 교환하면서 재회를 다짐했었지만, 지금은 조선이 미국의 친서조차 수령하지 않고 있다. 또 당시엔 조선도 휴전선을 ‘군사분계선’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지금은 ‘국경선’으로 간주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치 않다. 예전엔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던 김 위원장이 ‘적대적 국가와의 국경선’을 넘어올 것이라고 기대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김 위원장은 당시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재회했지만, 그 직후엔 또다시 바보 취급당했다고 여기고선 북미관계 정상화에 대한 미련을 깨끗이 접은 상태이다.
그런데 김 위원장은 전략적 계산에 능숙한 인물이다. 자신과의 재회를 염원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손짓을 활용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즉, 트럼프 대통령이 친서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내가 곧 한국에 가는데 당신과 만나고 싶다’고 제안하면, 김 위원장이 그를 조선으로 초대하면서 사적으로 만나자고 역제안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최근 담화에서 두 지도자가 친분이 있고 ‘조건부’ 접촉 가능성을 열어둔 것에서도 이러한 전망을 점쳐볼 수 있다. 아울러 대통령과 행정부가 달랐던 1기 때와는 달리 2기 트럼프 행정부가 대통령 중심으로 혼연일체가 되고 있는 것도 김 위원장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럼 김 위원장이 떠올리고 있을 법한 전략적 계산은 무엇일까? 네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는 ‘탐색’이다. 트럼프 행정부 차원에선 한반도 비핵화를 여전히 목표로 삼고 있지만, 정작 트럼프 대통령 본인은 조선을 “핵보유국”이라고 칭하면서 세계의 핵군축과 비핵화에 조선도 참여하면 좋겠다는 취지의 발언만 해왔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으로서도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만나 그의 진의를 타진해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입장을 밝힐지는 안개 속에 있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더라도 사적 대화를 선호하게 될 것이라고 보는 까닭이다.
둘째는 ‘북중관계’이다. 2018-2019년 ‘김정은-트럼프 시즌 1’이 보여준 가장 흥미로운 지점 가운데 하나는 북중관계에 있었다. 이 시기에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세 차례 만날 때, 이전엔 한 번도 없었던 김 위원장-시진핑 주석의 정상회담은 다섯 차례나 열렸다. 그리고 2019년 6월 이후 6년 넘게 열리지 않다가 9월 초 중국 전승절을 기해 김 위원장이 방중하기로 했다. 이처럼 오랜 기간 동안 북중관계가 냉랭했던 핵심적인 사유는 조선이 중국에 러시아처럼 자신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했고 중국은 이를 꺼려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 위원장의 방중 결정은 미묘한 지정학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우선 2018년 3월 김정은-시진핑 첫 정상회담은 북미정상회담이 활발하게 논의될 때 이뤄졌는데, 이번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을 타진하는 와중에 김 위원장의 방중이 결정되었다는 점이 눈에 띤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와의 재회에 앞서 북중관계를 다지려는 의도로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조선의 핵보유국 지위를 놓고 북중간에 이견이 좁혀진 것인지도 관심거리이다.
셋째는 ‘9차 당대회’이다. 2021년 1월에 개최된 8차 당대회의 핵심 기조는 ‘대미 장기전’이었다. 김정은 정권으로선 이런 기조를 계속 유지할 것인가를 두고 고심할 터인데, 트럼프 대통령과의 탐색적 대화를 통해 핵보유 묵인과 더불어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정책”의 변화 가능성을 확인하면, 2026년 1월에 열릴 것으로 보이는 9차 당대회의 기조도 바꿀 수 있다. ‘대미 장기전’이 성과를 거뒀다며 러시아와의 동맹 재결성, 중국과의 관계 강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축으로 하는 ‘전략적 지위의 공고화’를 향후 기조로 삼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조선으로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전략적 지위를 다질 수 있다.
끝으로는 ‘남북관계’이다. 김정은 정권은 이재명 정부 들어서도 2023년 연말에 선포한 ‘적대적 두 국가론’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있다. 김여정 부부장은 7월말부터 담화를 내놓고 있는데, 이는 1년 가까이 무응답으로 일관했던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전반적인 기조는 남북관계 단절을 유지하겠다는 것이지만, 한국 헌법의 영토 조항을 거론해온 것이 눈에 띤다. 이는 한국이 개헌 등을 통해 조선을 국가로 인정해달라는 취지를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한국의 반응이 시원치 않으면서 조선은 대미 관계의 유용성을 바라볼 공산이 있다. 북미관계의 재구축 방향이 핵보유 묵인과 더불어 북미 수교와 평화협정까지 가시권에 둔다면, 한국의 근본적인 입장 변화에도 상당한 압박을 가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김정은-트럼프의 재회 가능성은 우리에게 도전과 기회를 동시에 품고 있다. 우리에게 나쁜 시나리오는 재회가 무산돼 한미동맹 대 조선, 혹은 한미일 대 북(중)러 사이의 갈등과 대결 구도가 고착되는 것이다. 이보단 낫겠지만 상당히 곤혹스러운 시나리오는 재회의 결과가 한국이 배제된 상태에서 조선의 제한적인 핵보유 묵인, 대북 제재 완화, 북미 수교와 평화협정 논의 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북미정상회담의 성사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페이스 메이커(조력자)”를 자처한 이재명 정부로선 딜레마에 처하게 된다. 특히 비핵화 문제가 그러하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원칙을 유지해야 한다고 미국에 요구해 이것이 반영되면 북미정상회담의 성사 가능성은 희박해지고 남북관계는 더더욱 악화된다. 미국이 한반도 비핵화보다 북미정상회담을 중시해 한국의 요구를 뿌리치면 한국은 미국으로부터도 ‘패싱’ 당할 수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내려놓을 수도 없을 것이다.
대안은 없을까? ‘전환시대의 논리’부터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두 축으로 했던 ‘1991년 체제’는 종언을 고했다. 그래서 나는 ‘통일지향적인 특수 관계론’을 일단 내려놓고 조선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 ‘평화적 두 국가’로 응수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공식 국호 사용, 개헌 논의에 영토 및 통일 조항 포함, 국가보안법 개폐, 한미동맹의 유사시 목표에 무력흡수통일 배제, 한국-조선 수교 추진 등을 공론화해보자는 것이다. 이는 남북관계의 전환에 해당한다.
핵문제에 대한 전환적 사고는 더욱 절박해지고 있다. 놀랍게도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서 접점을 찾을 수 있다. 트럼프가 2기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 일관되게 해온 발언은 ‘세계의 핵군축과 비핵화’를 추진하면서 조선의 동참도 유도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그런데 ‘세계 핵군축과 비핵화’는 “북한의 비핵화”만 요구해 온 외부 세계에 대한 조선의 대항 담론이다. 우리가 직시해야 할 지점은 바로 이것이다. “북한의 비핵화”나 “한반도 비핵화”를 내려놓고 세계의 핵문제 해결이라는 관점에서 북핵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APEC 회담은 이에 관한 물꼬를 틀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러가 먼저 핵군축 협상을 하자는 입장인데, 시진핑 주석의 참석은 확실해보이고 러시아 고위 관료도 올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재명 정부는 미국과의 협의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핵군축 추진 의사에 적극적인 지지와 협력 의사를 밝히는 게 중요하다. 또 중국 및 러시아 등에도 이러한 의사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참석 가능성도 높아지고 미·중·러가 핵군축 문제를 논의할 공산도 커진다.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장 겸 평화네트워크 대표 wooksi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