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잠에서 깨다 l 정병호 글·구술, 푸른숲, 2만3000원


1976년, 일본 홋카이도의 승려 도노히라는 어느 절에서 위패를 발견했다. “황병만. 쇼와 18년(1943년) 9월10일.” 이를 계기로 그는 과거 슈마리나이 지역 우류댐 공사에 강제동원된 수많은 일본인과 조선인 노동자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채 매장됐다는 걸 알았다. 숲속 유골들을 꾸준히 수습해 온 그는, 1989년 이곳을 찾은 한국 인류학자 정병호(1955~2024)와 인연을 맺었다. 식민주의 폭력에 희생된 이름 없는 유골들이 긴 잠에서 깨어 세상에 나올 길이 열린 것이다.
릴게임신천지유골의 발굴과 귀환은, 단지 과거를 기억하는 것을 넘어 평화와 미래를 기획하는 거대한 연대였다. 두 사람의 주도 아래 1997년 전문가, 대학생, 자원봉사자 등 양국 시민사회가 힘을 합쳐 일제 강제노동 희생자 유골을 함께 발굴하는 공동 작업이 시작됐고, 서로 다른 상대를 이해하고 품는 이 연대는 ‘국가’의 틀에 갇히지 않고 재일동포, 소수민족 바다신2 다운로드 아이누, 동아시아 등으로 확장됐다. 꾸준한 작업 끝에 아직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유해는 115구. 과거사를 그대로 묻어두려는 한일 양국의 분위기가 심화되던 2015년, 시민들은 광복 70주년에 맞춰 유골을 고향으로 모셔가는 ‘70년 만의 귀향’을 단행했다.
“부드럽고 약한 사람들의 고리가 변화를 일으킨” 이 놀라운 이야기를, 지난해 작고 게임릴사이트 한 정병호 교수가 남긴 구술로 읽는다. 함께 기억하고 추모함으로써 서로를 이해하고, 이로써 평화로 나아가는 ‘디딤돌’을 놓을 수 있다고 믿은 ‘공공인류학자’의 희망이 새겨져 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기자 admin@no1reelsi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