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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지는 건 식으로 두 달리국내 정보기술(IT)업계 대기업에 재직 중인 김모 팀장은 최근 승진 직후 부하 직원이 된 동료 3명의 근무태도를 지적했다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당했다. 조사 결과 이들의 고발은 대부분 과장 또는 허위였고, 부서 이동을 피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도 일부 항목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돼 김 팀장은 징계를 받고 좌천성으로 전보 조치됐다. ‘공작(?)’에 성공한 직원들은 연이어 장기 병가를 신청했고 사측에선 괜히 불이익을 줬다는 말을 들을까 봐 반려하지도 못한 채 난처한 상황에 놓였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6년을 앞두고 일선 기업과 공공기관에서는 도입 취지인 ‘갑(甲)질’ 근절보다 오히려 ‘을(乙)질’ 확산으로 조직 문화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 공공단체 온다. 기준이 모호한 법 조항을 악용해 반복적으로 동료를 고소하거나, 다소 불쾌한 언행에 ‘정신질환 유발’ 등 명목으로 산업재해까지 신청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갑질 신고 남용…법원 “괴롭힘 아냐” 잇단 판결



그래픽=김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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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한국경제신문이 법률 인공지능 스타트업 엘박스와 2020년부터 지난달까지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소송 145건을 분석한 결과 “신고가 부당하다”며 회사 측이 제기한 취소소송의 인용률은 2022년 17%(4건)에서 지난해 36%(22건)로 높아졌다. 올 들어 지난달까지 제기된 5건의 소송 중에서도 사측 승소 건수가 2 대구은행 본사 건으로 인용률이 40%에 달했다.
실제 법원은 직장 내 괴롭힘 판단에 갈수록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서울의 한 공공기관 이사장은 부하 직원에게 업무시간 외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는 이유로 관할 지방고용노동청으로부터 과태료 500만원을 부과받았지만, 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서울북부지법은 지난달 20일 “메시지가 주로 출근 전후에 간헐 서울시창업자금 적으로 발송됐고, 강제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제도를 악용해 상급자와 동료를 공격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지방의 한 공기업 직원 A씨는 동료 30명을 상대로 23건의 고소·신고를 남발했지만 모두 인정되지 않았다. 회사는 사내 질서를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A씨를 해고했고, 지난달 법원도 “공익신고로 1억대출 30년상환 보기 어렵다”며 회사 손을 들어줬다.
정당한 인사관리와 지도까지 괴롭힘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한 외국계 금융사 직원 B씨는 성과 부진으로 저성과자 개선 프로그램(PIP)에 배정되자 상사의 발언을 문제 삼아 1000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은 “주관적 주장만으로는 인정할 수 없다”며 기각했다. 고객사의 항의 이메일 등 객관적 증거도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
 상급자만 징계 대상…괴롭힘 기준도 모호



그래픽=김하경 기자


직장 내 괴롭힘 법은 ‘업무상 지위 또는 관계의 우위’를 전제로 한다. 하급자의 조직적 괴롭힘은 제재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경북의 한 기초자치단체에서는 팀장이 “직원들이 나 때문에 힘들어 한다”는 말을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징계는 상급자인 과장에게만 내려졌다. 하급자의 따돌림이나 악의적 민원은 현행법상 괴롭힘 요건에 포함되지 않아 사실상 면책된다. 직장 내 괴롭힘을 규정한 근로기준법 6조는 신고자에게 해고나 불이익을 줘선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어, 이를 방패 삼아 징계나 인사 조치를 피하려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매년 크게 증가하고 있지만 1차 판단 기관인 고용노동부에서 법 위반으로 판정한 비율은 낮아지고 있다. 지난해 고용부에 들어온 괴롭힘 신고는 1만1751건이었지만 과태료 부과, 검찰 송치 등 후속 절차가 이뤄진 비율은 12.4%(1458건)에 그쳤다. 자체 취하한 건이 3132건, 조사 결과 위법사항이 없는 사례가 3836건(32.6%)이나 됐다. 위반 사항 없음으로 종결된 신고도 2019년 767건에서 지난해 3836건으로 5배 이상 늘었다. 제도 도입 이후 신고는 급증했지만 상당수가 실제 괴롭힘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2019년 법 시행 이후 적응장애에 따른 산업재해 신청이 급증한 것도 눈에 띈다.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가 가해자나 회사를 상대로 형사 고소와 손해배상 청구 소송, 산업재해 신청을 한꺼번에 하고 있어서다. 2016년 19건에 불과하던 적응장애 산재 승인 건수는 법 시행 이후인 2021년 245건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에도 250건이 승인돼 매년 비슷한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한 노동법 전문 변호사는 “적응장애는 일반 정신병 산재와 달리 진단 과정에서 비교적 쉽게 질병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무원은 ‘품위유지 의무 위반’으로 처벌
공공부문도 예외가 아니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2023년 중앙부처 공무원에 대한 징계 처분 2221건 중 ‘품위유지 의무 위반’이 67.4%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 항목은 상사나 동료에 대한 폭언, 갑질, 성희롱 등 직무 관련 비위를 포괄하는 징계 사유로 주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에 적용된다.
국가공무원 전체를 기준으로 봐도 비슷한 흐름이다. 지난 6년간(2018~2023년) 품위유지 의무 위반으로 징계를 받은 공무원은 8000여 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중징계
(파면·해임·강등·정직)를 받은 사례가 꾸준히 늘고 있다. 2018년 453건에서 2023년 801건으로 76% 가까이 증가했다.
이처럼 공직사회 내 괴롭힘 징계가 양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판단 기준은 여전히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부가 지난해 실시한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에 따르면 판단 근거가 비교적 명확한 폭언·폭행(31.6%)보다 모욕·명예훼손(51.8%), 따돌림·차별(41.2%), 부당 지시(34.8%) 등 모호한 유형이 더 많았다. 무엇이 괴롭힘에 해당하는지 객관적인 기준이 없는 데다 신고가 들어오면 양측을 즉시 분리하고 부서원 전체를 조사해야 하는 만큼 행정력 낭비도 크다.
 조직문화 좀먹는 ‘오피스 빌런’ 해결법은?
최근 조직문화를 해치는 이른바 ‘오피스 빌런’의 부정적 영향과 이에 따른 비용을 정량화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 인성평가·조직 컨설팅 전문업체인 호건어세스먼트는 지난 4월 낸 보고서에서 미국 기업들이 오피스 빌런 때문에 입는 손실이 2920억달러(약 415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우리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한 기업 인사담당자는 “내부 조사를 하면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못 믿겠다고 불만을 제기하는 통에 결국 외부 로펌이나 노무법인을 선임한다”며 “로펌은 기본 3000만원부터 부르더라”고 했다.
법적으로 모호한 판단 기준이 신고 오남용을 부추긴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인사담당자 48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제도 정착을 위해 필요한 사항을 묻는 질문(복수응답 가능)에 ‘괴롭힘에 대한 명확한 법적 정의 규정이 시급하다’는 응답이 62.6%로 가장 많았다. 한 대기업 인사부문 담당자는 “‘지위 또는 관계 등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라고 명시된 법적 기준부터 너무 추상적”이라며 “지속성이나 반복성 등 구체적인 기준과 고용부의 추가 지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동법 전문가인 조인선 법무법인 와이케이 변호사는 "직장 내 괴롭힘법은 제도적 필요성이 크지만, 실무 운영에 있어 상호 간 반복적인 신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적정한 업무지시권의 범위와 괴롭힘의 객관적 증거·지속성에 대한 세심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용훈/곽용희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