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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탈리아 리도섬에서 개최 중인 제82회 베니스영화제의 화두는 ‘넷플릭스’입니다. 박찬욱 감독이 영화 ‘어쩔수가없다’로 베니스영화제에 진출하면서 한국 영화인들의 관심이 이 영화제에 쏠린 가운데, 최근 발표된 ‘경쟁 부문’ 가운데 무려 3편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칸영화제, 독일 베를린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일컬어지는 베니스영화제가, 극장 개봉작만을 경쟁 신용유의자 부문에 초청하던 일반 관례를 완전히 깨고 이번엔 넷플릭스 작품을 3편이나 초청하면서(재작년 3편, 작년 1편) 올해 리도섬 현장 곳곳에선 넷플릭스 로고가 심심치 않게 보일 정도입니다.



제82회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해 황금사자상을 두고 경쟁하는 ‘제이 캘리’으 한 오픈특가 장면. 세계적인 배우 조지 클루니가 주연을 맡았고, 역시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노아 바움벡 감독이 연출했습니다. [넷플릭스]



3편 가운데 한 편이, 올해 12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될 예정인 ‘제이 캘리(Jay Kelly)’입니다.

세계적인 감독 신용불량자 통장압류 으로 추앙받는 노아 바움벡 감독이 연출을, 섹시한 중년 스타로 선망의 대상인 배우 조니 클루니가 주연을 맡은 ‘제이 캘리’는 어떻게 베니스영화제의 선택을 받았을까요. 28일(현지시간) 베니스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팔라초 델 치네마’ 제1극장인 살라 그란데에서 영화를 살펴봤습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주인공 제이 캘리(조지 클루니)는 엄청 디즈니 체크카드 난 성공을 거둔 세계적인 스타입니다. 그의 곁에는 언제나 헌신적인 매니저 론(아담 샌들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론은 제이 캘리의 성공을 위해 함께 달려왔고, 그 결과 제이 캘리는 자신이 이루고자 했던 모든 것을 이뤘으며, 타고난 연기력과 빼어난 외모로 만인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명배우 자리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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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이 캘리’에서 주인공 제이 캘리 역을 맡은 배우 조지 클루니(오른쪽)과 매니저 론 역을 열연한 배우 아담 샌들러가 28일(현지시간) 베니스영화제에 참석해 레드 카펫을 밟은 모습. [EPA·연합뉴스]



하지만 그에겐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이 벌어집니다. 오래전 연이 끊겼던 대학 친구 티모시(빌리 크루덥)와의 조우였습니다.

제이 캘리 앞에 우연히 옛 친구 티모시가 나타나자 매니저 론은 티모시를 경계합니다. 하지만 제이 캘리는 수십 년 만에 만난 친구에게 경계심을 풀어버립니다. 두 사람은 술집으로 가 회포를 풀고 옛 이야기를 나누며 사적인 시간을 보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제이 캘리를 보는 티모시의 시선이 좀 이상합니다. 두 사람의 조우가 우연적인 만남이 아니라, 마치 뭔가 할 얘기가 있어 우연을 가장해 만났던 것처럼 말이지요. 티모시는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제이 캘리에게 소리칩니다.
“캘리, 네가 내 인생을 훔쳤다고. 이 개자식아.”



오랜 친구였던 티모시와 만났지만 반가운 마음도 잠시, 두 사람의 앙금이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이날 주먹다짐을 한 제이 캘리는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한 여행을 즉흥적으로 결정합니다. [IMDb]





영화 ‘제이 캘리’의 포스터. 넷플릭스 로고가 선명합니다. [넷플릭스]



티모시는 급기야 제이 캘리에게 주먹을 날리고, 제이 캘리는 당황하지만 술김에 반격합니다. 옛 친구 사이엔 깊은 앙금이 숨겨져 있었고 시간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최악의 감정이었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스포일러가 되니 자세히 적을 순 없지만 제이 캘리는 한 친구의 운명을 바꾼 선택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친구와 크게 다툰 다음 날, 내적인 소요를 겪은 제이 캘리는 촬영 중이던 영화를 모두 접어버립니다. 그러고는 아내, 딸과 함께 프랑스 여행을 즉흥적으로 결심합니다. 여기까지가 영화 초반부 내용입니다. 제이 캘리는 왜 갑작스러운 선택을 내린 걸까요. 자신의 성공적인 삶 이면에서 놓쳤던 것들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깨달음’을 얻고 여행을 떠난 걸까요. 그러나 분명한 점은 그가 자신의 삶이 환희로만 가득한 게 아니라, 오점투성이였음을 반성하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조지 클루니도 결국 세월을 피해 가진 못하나 봅니다. 영화에선 ‘섹시한 중년 스타’의 대명사와 같은 모습이었는데 이날 현장에서 바라본 조지 클루니는 많이 지쳐 보였습니다. 왼쪽 여성은 조지 클루니의 아내인 아말 클루니. 두 사람은 레드 카펫에 함께 올랐습니다. [로이터·연합뉴스]



영화 ‘제이 캘리’는 후회하는 인간을 사유하는 강렬한 힘을 가진 영화로 이해됩니다.

후회는 영화 속에서 끊임없이 변주돼 온 영원한 주제였지요, 지금 걷는 길이 합당하다고, 마땅히 가야 할 길이라고 판단해 누구나 자기만의 선택을 내리지만, 뒤돌아 봤을 때 그것이 잘못된 길이었다는 뒤늦은 자각이 올 때가 적지 않습니다. 무수한 변주에도 불구하고 후회란 주제가 끊임없이 공감을 얻는 이유는 모든 인간이 후회하면 산다는 점 때문일 겁니다.



성공한 영화배우, 그러나 자신의 삶이 오점으로 가득했음을 제이 캘리는 깨닫습니다. [IMDb]



제이 캘리의 직업이 영화배우란 점도 주제의식을 한층 돋보이게 합니다. 배우 조지 클루니의 자전적 서사인 듯 보이지만, 영화 내적으로만 봐도 ‘영화(환영)’와 ‘삶(기억)’에 대한 사유를 이끌기 때문입니다. 가령 “난 이 영화가 어떻게 끝날지를 알아”, “모든 기억이 전부 영화처럼 느껴져”란 대사는 실재하는 기억과 부재하는 현실을 고민케 하고, 제이 캘리가 영화 촬영 현장에서 내뱉는 대사 “여기 더 있기 싫어. 이 파티를 끝내고 싶어. 난 이미 죽었는지도 몰라” “난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란 독백은 삶 전체를 움켜쥡니다. 또 영화 산업은 다음 영화를 찍기 위해 이번 영화로 돈을 벌어야만 하는데, 그건 삶의 연속된 과정이기도 합니다. 다음 스텝을 밟기 위해선 어떤 성과를 내야 하지만, 그 ‘다음’이 현재화됐을 땐 그것이 생각했던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 되면서 우리는 좌절을 겪게 되니까요. 끝없는 질주이자 비가시적인 커튼을 열어야 하는 과정이 곧 삶의 본질임을 영화는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이날 열린 ‘제이 캘리’ 월드 프리미어 상영에서 노아 바움벡 감독과 배우 조지 클루니는 10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검색해보니 외신에선 조지 클루니의 자전적 모습이 영화에 지나칠 정도로 투영됐다는 비판도 없지 않지만, 영화 ‘제이 캘리’는 그 비판을 넘어서는 울림이 분명하게 감지됩니다.
수상 결과는 9월 7일 일요일 새벽(한국시간)에 발표됩니다. 참고로 ‘제이 캘리’는 넷플릭스에서 12월 5일 공개될 예정입니다.



베니스영화제에 도전장을 내민 넷플릭스 영화 ‘제이 캘리’는 6일(현지시간) 영화제 본상을 받아낼 수 있을까요.





베니스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리도섬 ‘팔라초 델 시네마’ 앞의 모습. 세계적인 스타들의 레드카펫 방문 현장을 ‘직관’하고자 뜨거운 햇빛을 피해 우산을 쓰고 기다리는 모습입니다. [김유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