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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자라면 CNS가 뭘 뜻하는지 잘 안다. CELL-Nature-Science, 영향력지수가 가장 높은 세 학술지의 약자다. 저 학술지 중 한 곳에라도 논문을 실을 수 있으면, 그날로 과학자는 장원급제라도 한 듯 학계에서 추앙받게 된다. 따라서 현대를 살아가는 생물학자들은 자연스레 CNS의 노예가 된다.




논문 중심주의가 초래한 한국 과학의 참담한 결말



막 대학원생이 됐을 때를 기억한다. 당시 포스텍 생명과학과는 남홍길 개인채무 , 오병하, 신희섭 교수 등이 CNS에 논문을 출판하고 전국적으로 유명해지고 있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국내 대학 소속의 교신저자만으로 이루어진 CELL 논문은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었는데, 배석철 충북의대 교수가 바로 그런 논문을 출판해 당시 한국 생물학계가 시끌벅적한 적이 있다. 자기 분야 외에는 주변 분야에 별 관심도 없던 생물학 대학원생과 돈 불리는법 교수들도, 배석철이라는 이름은 모두 알게 됐다. 일반인에겐 하루 이틀 화제가 될 그 뉴스가, 과학자 사회에선 배 교수를 거의 K팝 아이돌로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오직 논문만이 과학자의 업적을 설명한다는 이 바닥의 진리를 그때 배웠다. 장사꾼은 이윤으로, 가수는 노래로, 경찰은 조서로 말하는 것처럼 과학자는 논문으로 말하는 법이다.

신한은행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의 생물학계는 급속히 증가하는 연구비와 대학원생으로 고속성장하고 있었고, 국내에서 출판되는 논문의 숫자도 빠르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교수와 연구원들은 누가 ‘네이처’에 논문을 냈는지로 서로를 평가하고, 바로 그 잣대로 교수를 임용하고, 연구비를 주기 시작했다. 뒤탈 나는 걸 싫어하고 책임지는 짓을 절대로 웹서버용 백신? 하지 않는 한국 공무원들의 관료주의 체제 속에서 민간회사 클라리벵이트사가 만들어낸 영향력지수 (Impact Factor·IF)는 훌륭한 평가도구가 됐다. 논문 그 자체의 질이 아니라 학술지의 영향력을 평가하는 지수가, 과학자의 업적을 평가하는 절대적인 도구가 돼버린 셈이다. 그 이후 한국 생물학계는 영향력지수를 위해 달려가는 경주마들의 경마장이 돼버렸다. 신용불량자 취업

확실히 한국 생물학계의 양적 성장은 두드러졌다. 몇 년 전 ‘네이처’는 한국 정부가 과학기술 연구개발비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계 2위 규모의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대서특필한 적이 있다. 이 사실에 자랑스러워해야 할 한국 과학계에선, 오히려 과학기술자와 과학 관료들 간의 갈등이 고조됐다. 한국의 R&D는 투자 대비 효율성이 형편없다는 인식이 퍼졌고, 양측은 서로를 힐난하기 바빴다. 바로 이 시기였다. 한국 과학계가 유례없는 고도성장을 겪던 시기에, 과학기술자들과 과학 관료들은 치열하게 미래를 고민하기보다 숫자로 표현되는 성과에만 집착했고, 그 결과는 출판 인플레이션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뉴스타파는 ‘와셋’, ‘오믹스’ 따위의 형편 없는 약탈적 학술지와 학회에 참석하는 수천명의 과학기술자의 행태를 고발했고, 사회 지도층이 과학 학술지 출판을 일종의 자녀 스펙으로 부도덕하게 사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렇게 엄청난 사건을 겪었어도, 한국의 연구개발비를 집행하는 연구재단은 부실 학술지 출판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고, 여전히 한국 과학자들은 수천억원의 국민 세금을 약탈적 학술지에 가져다 바치고 있다. 과학기술의 성과를 부실한 숫자로만 평가하며 자화자찬하기 바빴던 한국의 과학기술계는 결국 카르텔과 마피아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윤석열에 의해 도륙당했고, 한국 과학기술의 씨앗은 크게 훼손됐다.




태국의 생물학에서 찾은 과학의 주체성과 각자의 과학



우리에게 태국은 동남아시아의 관광지로만 알려져 있다. 나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얼마 전 우연에 우연이 겹쳐 태국에서 열린 국제식품산업학회에 초대받아 실험실의 꿀벌 관련 연구 결과를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 중국에서 열린 교류학회에서 만난 태국 식품생물학 연구자들과 학술교류를 하던 중에, 태국에 왕립으로 세워진 과학기술대학이 활발하게 생물학을 식품 산업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고, 그들 중에 꿀벌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꿀벌은 곤충이기 때문에 따뜻한 날씨에만 활동을 할 수 있고, 그런 이유로 국내에서도 양봉은 남쪽 지방이나 제주도에서 더욱 활발하다. 태국은 적도 부근의 국가이니, 만약 태국의 연구자들과 꿀벌 연구에 유전학을 접목할 수 있다면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회가 끝나고 난 후 그런 생각을 담아 e메일을 보냈고, 내 발표를 유심히 들었던 연구자가 몇 달 후에 열릴 국제학회가 있다며 그 학회에 나를 초청 연사로 초대해주었다. 꿀벌 연구를 통해 국제교류를 하고 싶은 마음에 태어나 처음으로 태국 방콕에 도착했다. 방콕은 생각보다 큰 국제도시였다. 대만과 싱가포르 등지에서 온 학자들과 학술교류를 하면서 지금까지 기초과학을 전공한 생물학자로 살아온 내 관점이 처참하게 좁아터졌음을 깨달았다.

첫째, 생물학은 의학의 종속 학문이 아니다. 생물학의 시작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종의 이름을 지어주는 분류학과 다윈에서 정점에 이른 자연사와 진화생물학이었다. 이후 18세기 생물학이 근대과학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생물학의 유용성이 알려진 분야는 농업과 식품과학 분야였다. 독일의 생리화학자 리비히는 화학비료를 만들어 농업에 혁명을 일으켰고, 프랑스의 미생물학자 파스퇴르는 저온살균법을 비롯한 여러 학술적 업적을 통해 식품영양학을 근대화시켰다. 프랑스의 외과 의사였던 끌로드 베르나르가 생물학을 통해 의학을 근대화하려던 시도는 19세기나 돼서야 나타났다. 즉 생물학은 원래 농업과 식품 분야의 근본 학문으로 세상에 태어났던 셈이다.

태국의 생물학이 한국에 비해 더 첨단을 달리지 않는다. 하지만 태국은 생물학을 자국이 필요로 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여 발전시키고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태국 음식과 동남아시아의 비옥한 농업 환경을 장점으로, 태국 생물학자들은 자신들의 생물학을 식품과 농업에 특화하고 있었다. 미생물과 효모를 이용한 발효과학으로 식품의 품질을 높이고, 바다에서 자라는 조류를 이용해 식품을 개발하고, 이런 식품의 현대화 과정에 적극적으로 분자생물학을 응용하는 것이 태국 생물학이 스스로 찾아낸 주체성의 핵심이었다.

태국은 동남아에서 유일하게 식민 지배를 받지 않은 국가라고 한다. 우리에겐 관광지에 불과해 보이고, 논문만으로 평가하면 태국의 과학 수준이 낮아 보이지만, 식품과 농업을 통해 생물학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논문만 좇는 한국의 과학에선 볼 수 없는 희망을 보았다면 과장일까.

김우재 낯선 과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