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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자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여기며 주변국을 조공(朝貢)을 바치는 국가처럼 생각합니다. 이럴 때 한국은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를 줄이고 ‘디리스킹(derisking·위험 분산)’ 전략을 취해야 합니다.”
동구권의 체제 전환 및 비교경제체제 연구에서 주목받아온 제라르 롤랑 UC버클리 교수는 19일 “중국은 과거 청나라가 미국 파산 조공을 통해 주변국을 관리한 것처럼, ‘트레이드 파워(무역 우위)’를 이용해 경제적 (종속) 관계로 만들려고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또 “많은 사람이 트럼프 대통령은 몇 년 후 사라질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 이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며 “혼돈스러운 국제 질서에서 한국이 영국 및 EU의 중견 국가들과 협력하는 것이 현실적인 전략”이라고 카드론 상환 강조했다. 롤랑 교수는 이날 재단법인 통일과나눔·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공동 주최 포럼에서 ‘트럼프 시대의 국제 질서’를 주제로 강연 후, 인터뷰에 응했다.
“주변국 순위 매기는 중국”
–한국이 중국의 조공국이 될 위험성이 있다고 했는데.
“자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보는 중국은 주변국을 위성국가로 인식한다. 아파트대출금리 경제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과거처럼 (현대판) 조공을 통해 주변국을 관리하려고 한다. 주변 국가를 1순위, 2순위 식으로 나누고, 누가 더 가까운 중국의 친구인지 서열을 매기고 있다.”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사용 사례는.
“호주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기원에 대한 독립 조사를 요구하자, 중국은 호주산 제품 수입을 제한하며 카드사 종류 경제적 보복에 나섰다. 리투아니아는 ‘대만대표처’를 개설했다는 이유로 중국의 경제 보복을 당했다. 중국에 의존할수록 중국이 무역을 무기로 삼을 가능성이 커진다. (고개를 흔들며) 한국에서 유행한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한다’는 ‘안미경중(安美經中)’은 매우 단순한 (해서는 안 될) 접근법이다.”
–중국이 ‘현대판 조공’ 관계를 파산비용 따르지 않는 국가에 군사력을 사용할 가능성은.
“중국의 군사력 사용은 최후의 수단일 것이다. 중국의 주요 영향력은 경제력이다. 조공국이 되면 중국의 눈 밖에 나는 일을 피해야 하고, 때로는 중국이 원하는 일을 하도록 압박받게 된다.”
제라르 교수는 강연에서 “중국에 의존하게 될수록 중국은 압력을 가할 수 있다. 중국은 자신을 인자한 부모로, 작은 나라들을 자녀로 보는 경향이 있다. 자녀가 말을 듣지 않으면 ‘교훈’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지원으로 EU와 협력 강화”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중국과의 무역 의존을 줄이고 훨씬 더 다변화해야 한다. 유럽 국가들처럼 ‘디리스킹’해야 한다. 무역 자체는 좋은 일이지만, 특정 국가에 과도하게 의존하면 그것이 상대국의 정치적 무기가 될 수 있다.”
–한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미국과의 관계를 더 강화해야 하나.
“미국과 한국의 지정학적 이해관계는 다르다. 북한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은 필수적이지만, 동시에 중국과의 원만한 외교도 북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과 모두 잘 지내야 하는 좁은 회랑(corridor)을 걸어야 한다.”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레버리지(외교적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고 했는데.
“남한이 우크라이나를 적극 지원하면 국제사회에서 주목받고, 북한과의 대치에서도 지렛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EU 국가들과 공동 이익을 강화하고 독일, 프랑스 같은 국가와 관계를 굳건히 할 수 있다. 이는 충분히 고려할 만한 전략이다.”
–한국은 러시아를 자극한다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나는 오히려 반대로 본다. 러시아가 반발할 수 있지만, 한국에 대한 실질적 보복 능력은 제한적이다. 러시아가 강력히 대응하기는 힘들다. 러시아가 북한에 무기를 제공할 수 있지만, 현재 러시아의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대규모 지원은 어렵다.”
“한일 협력은 전략적 필요”
–한일 관계도 더 굳건해져야 한다고 했는데.
“프랑스와 독일이 과거 적대 관계를 극복하고 협력했듯, 한국도 일본과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 지금 과거 식민지 문제를 계속 거론하는 것은 한국에 실익이 없다. 중국 견제를 위한 한일 양국의 협력이 필요하다.”
–일본을 용서하고 함께 가야 한다는 건가.
“한국이 과거에 매달리는 정책은 잘못됐다. 지정학적 측면에서 한국에 결코 좋은 정책이 아니다.”
–한국이 핵무장하거나, 일본처럼 농축 및 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국의 핵무장은 오히려 한국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 방어력 측면에서 실질적 이득은 크지 않고 긴장만 고조될 수 있다. 한국이 취해야 할 가장 합리적인 방안은 핵우산 등 미국의 안전 보장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내세우고 있는데, 남북 관계 전망은.
“개성공단조차 재가동이 어려운 상황에서 대규모 협력은 불가능하다. 북한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높은 기대치는 비현실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이 대화조차 거부하는 상황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낮은 단계에서의 남북 협력 조치다.”
“동맹 신뢰 흔든 트럼프, 중견국 협력이 해법”
–미·중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데.
“미·중 경쟁에서 중국이 이기고 있다. 그런데 이는 중국 자체의 힘이 강하기보다는 트럼프의 자해적 정책 때문이다. 트럼프는 국가 행정 체계를 개인에 대한 충성 체계로 퇴보시키고 있다. 이렇게 민주주의가 약화되는 것은 중국에 상대적 이익을 주고 있다.”
–트럼프가 가장 크게 잘못하고 있는 것은.
“동맹 간 신뢰를 훼손한 것이 중대한 실수다. 미국의 지지가 모호해지면서 주변국에서 핵무장 논의가 나오는 것은 심각한 신호다. EU에 대해서도 우호적이지 않다. 트럼프는 극우 정당들을 지지하며, EU를 약화시키려는 태도를 보였다. 개별 국가들과 상대하는 것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주의’는 트럼프 임기가 끝난 후에도 계속될까.
“트럼프의 인격적 결함이나 그의 (잘못된) 세계관은 길게 논의할 수 있는 주제다. 그러나 미국 민주주의가 과연 트럼프의 대통령 임기를 버텨낼 수 있을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당분간 중견국들이 협력하는 것이 현실적인 전략이다.”
☞제라르 롤랑 교수
다양한 경제 시스템의 구조와 운영 방식을 연구하는 비교경제체제 및 체제 전환 연구에서 주목받아 온 학자다. 벨기에 브뤼셀 자유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구소련·동유럽의 이행경제와 민주주의·정치경제학 분야에서 연구를 해왔다. 대표 저서 ‘체제 이행과 경제학’은 이 분야의 고전으로 꼽히며 학계에서 널리 인용되고 있다. 서울대 김병연 교수와 북한 체제에 대해 공동 연구를 해왔다.
☞디리스킹(de-risking)
특정 국가나 시장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여 위험을 분산하는 것을 의미한다. 2023년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전면적으로 끊는 디커플링(decoupling)이 아니라 과도한 중국 의존을 방지하자고 한 데서 널리 쓰이게 됐다. 단기적으로 비용 증가가 불가피하더라도 장기적 안정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EU는 디리스킹을 현실적 대안으로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