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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경효왕의 현릉(玄陵)과 노국대장공주의 정릉(正陵), 곧 현정릉(玄正陵) 쌍릉은 공민왕이 살아 있을 때 먼저 세상을 떠난 왕비와 훗날 자신을 위해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을 골라 조성한 왕릉이다. 2026년 4월 18일. © 강형원 촬영
| 서울=강형원 칼럼니스트 |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王建·877~943)의 12대 손 왕전(王顓)은 1351년 고려 제31대 왕에 올랐다. 원나라가 무너지기 17년 전이다. 훗날 공민왕으로 불린 그는 원의 영향에서 벗어나 고려의 자주성을 되찾고, 권문세족이 장악한 토지와 노비 제도를 바로잡으려 한 대표적인 개혁군주다. 1356년 기철 일파를 제거하고 정동행성 이문소를 폐지했으며 쌍성총관부를 회복하는 등 본격적인 반원 개혁에 나섰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에서는 공민왕의 현정릉을 경효왕의 릉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개성역사유적지구'의 12개 필수 유적 중 하나로 포함했다. 공민왕이라는 시호는 명나라에서 내려준 것이어서 고려가 올린 시호인 경효왕을 앞세운다.
올봄 개성에서 마주한 경효왕의 현릉과 노국대장공주의 정릉, 곧 현정릉은 고려 왕릉 건축의 정수였다. 두 봉분을 나란히 배치한 쌍릉의 대칭 구조와 정교한 병풍석·난간석, 문인석·무인석·석수(石獸)의 질서에는 한 시대의 미감과 기술력이 응축돼 있었다.
현정릉(玄正陵) 쌍릉 앞을 십이지신 가운데 여덟 번째인 양(未) 석상 한 쌍이 지키고 있다. 두 봉분을 나란히 배치한 쌍릉의 대칭 구조와 정교한 병풍석·난간석, 문인석·무인석·석수(石獸)의 질서에는 고려시대의 미감과 기술력이 응축돼 있다. 개성, 2026년 4월 18일. © 강형원 촬영
공민왕은 어린 나이에 원나라 수도로 건너가 10여 년을 그곳에서 지냈다. 그는 원이 고려 국왕의 즉위와 폐위에 얼마나 깊숙이 개입하는지 지켜보았다. 원의 황후가 된 고려 출신 기황후의 친족들은 고려 조정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원 황실의 노국대장공주와 혼인한 공민왕은 역설적으로 처가인 원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개혁을 추진했다. 즉위 뒤 친원 권문세족을 누르고 왕권 회복에 나섰으며, 1356년에는 기황후의 오빠 기철과 그 일파를 제거하고 정동행성 이문소를 폐지한 뒤 쌍성총관부를 되찾았다.
쌍성총관부의 위치를 둘러싼 역사학계의 논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는 1295년 원의 요양성이 강남에서 운송된 쌀 3000석으로 쌍성의 백성을 진휼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만으로 쌍성의 정확한 위치나 운송 경로를 확정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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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필자는 원의 요양행성 행정망과 물류 체계를 함께 고려할 때, 쌍성총관부를 오늘날 함흥·영흥 일대로 단정하기보다 요녕성 철령시 일대나 만주 내륙의 다른 후보지까지 열어 놓고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국제 정세는 어느 한쪽을 선택한다고 해결될 만큼 단순하지 않았다. 대륙에서는 원의 힘이 빠르게 약해지고 홍건적의 봉기가 확산됐다. 명나라가 일어나는 동안 고려는 무너지는 원과 떠오르는 명 사이에서 국익을 지켜야 했다.
오늘날 대한민국(ROK)이 미국(USA)과의 동맹을 유지하면서 가까운 이웃인 중화인민공화국(PRC)과의 경제·외교 관계도 관리해야 하는 현실과 겹쳐 보이는 대목이다.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는다. 그러나 강대국 사이에서 자주성과 실리를 함께 지켜야 하는 지도자의 지정학적 고민은 시대를 넘어 되풀이된다.
1361년 홍건적이 개경을 。령하자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는 경북 안동까지 피란했다. 왕비가 차가운 물을 건널 때 마을 부녀자들이 물속에 들어가 허리를 굽혀 사람 다리를 만들었다는 전승은 오늘날 안동의 민속놀이 '놋다리밟기'의 유래 가운데 하나로 전해진다.
공민왕은 외세뿐 아니라 개혁에 저항하는 내부 기득권과도 맞서야 했다. 측근의 배신과 암살 시도까지 겪었다. 1363년 김용이 배후에서 일으킨 흥왕사의 변 때 무장 세력이 공민왕의 행궁을 습격했다. 환관 안도치는 왕을 대신해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은 공민왕에게 '과연 누구를 믿을 수 있는가'라는 깊은 불신을 남겼을 것이다. 개혁의 성패는 결국 사람에게 달려 있다. 예나 지금이나 만사(萬事)는 인사(人事)다.
공민왕은 기존의 혈연·학연·문벌과 거리가 먼 승려 신돈을 발탁했다. 그에게 '수정이순논도섭리보세공신 벽상삼한삼중대광 영도첨의사사사 판중방감찰사사 취성부원군 제조승록사사 겸 판서운관사'라는 긴 공신호와 관직을 내렸다. 최고위 행정과 군사·감찰, 불교계 관리, 천문·기상 업무까지 아우르는 막대한 권한이었다. 개혁을 맡길 인재가 부족했던 공민왕은 한 사람에게 큰 권한과 책임을 집중시켰다.
개성에 있는 공민왕의 현정릉(玄正陵)은 북한에서 경효왕릉(敬孝王陵)으로 불리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개성역사유적지구' 를 구성하는 12개 주요 유적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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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이라는 시호는 명나라에서 내려준 것이어서, 북한에서는 고려가 올린 시호인 경효왕(敬孝王)을 앞세워 부른다. 개성, 북한, 2026년 4월 18일. © 강형원 촬영
신돈은 1366년 전민변정도감을 통해 권문세족이 불법으로 빼앗은 토지를 돌려주고, 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을 양민으로 회복시키려 했다. 토지와 노비는 당시 권력과 부의 근간이었다. 전민변정은 단순한 행정 정리가 아니라 기득권의 경제 기반을 흔드는 구조 개혁이었다.
권문세족의 반발은 거셌다. 신돈에게 권력이 집중되자 비판과 의혹도 뒤따랐다. 공민왕과 신돈의 신뢰는 흔들렸고 신돈은 1371년 제거됐다. 개혁을 추진할 사람을 찾기도 어렵지만, 그에게 어디까지 권한을 맡기고 어떻게 견제할지는 더 어려운 문제다.
비슷한 행정 현상은 현대 정치에서도 나타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기 행정부에서는 여러 고위 당국자가 본래 직책과 함께 다른 기관의 책임을 한시적으로 겸했다. 마코 루비오는 국무장관과 국가안보보좌관을 겸하면서 2025년에는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의 국립기록관리관 직무대행도 맡았다. 숀 더피 교통부 장관은 2025년 하반기 NASA 임시 국장을 겸했고,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은 한동안 IRS 청장 직무대행을 맡았다. 대니얼 드리스컬 육군장관 역시 ATF 국장 직무대행을 겸했다. 이처럼 지도부가 신뢰하는 인물에게 여러 책임을 동시에 맡기는 사례가 이어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기업인 일론 머스크와 DOGE를 앞세운 정부 조직·인력 감축도 추진했다. 미 연방 인사관리처(OPM)는 2025년 약 31만7000명의 연방 직원이 퇴직·사직 등으로 정부를 떠났다고 밝혔다. 지도자가 자신의 뜻을 이해하고 실행할 인재를 충분히 찾지 못하면 신뢰하는 소수에게 직책과 권한이 집중되기 쉽다. 시대와 체제는 달라도 반복해서 나타나는 행정의 딜레마다.
이재명 대통령도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여러 이해관계와 부딪히고 있다. 어린 시절 공장에서 일했던 개인사는 그의 정치적 서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왔고, 2024년에는 부산에서 흉기 피습을 당했다. 대통령 취임 뒤에는 인사 검증 논란과 사법 제도 개혁의 방향, 육·해·공군 사관학교 통합 구상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졌다. 정부는 사관학교 통합의 명분으로 '합동성 강화'와 교육 효율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야권과 각 군 사관학교 총동창회 등은 통합 방식과 추진 속도에 반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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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 학교가 신분과 인맥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우리 사회에서 사관학교 동문들의 결속 역시 무시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러나 사관학교 통합 구상의 핵심 쟁。은 동창 조직의 존속 자체보다 미래전에서 필요한 합동성, 군별 전문성, 인재 선발과 교육의 효율성을 어떻게 함께 확보할 것인가에 있다.
개혁은 명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이해당사자를 설득하고, 정책의 필요성과 비용을 설명하며, 시행 과정에서 신뢰를 유지해야 한다. 인사 실패와 정책 혼선은 정치적 자본을 소진하고 개혁의 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이 대통령 역시 최근 기자회견에서 개혁과 통합을 함께 추진하려면 더 많은 소통과 국민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민왕과 이 대통령을 직접 견주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시대도 체제도 권력의 성격도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두 시대의 정치에서 반복되는 질문은 읽을 수 있다. 강대국 사이의 외교, 기득권의 저항, 개혁을 실행할 인재의 부족, 신뢰하는 사람에게 권한을 집중시키려는 유혹, 그리고 인사와 소통의 실패가 개혁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다.
역사는 똑같이 반복되지 않는다. 다만 권력과 두려움, 충성과 배신, 개혁과 저항이 빚어내는 모습은 거듭 나타난다. 공민왕이 완성하지 못한 정치 개혁과 달리, 현정릉은 고려의 미학과 기술, 한 시대의 이상을 간직한 채 남아 있다.
개성 현정릉 앞에서 오늘의 정치를 생각한다. 개혁은 올바른 사람을 찾고, 필요한 권한을 주되 견제하며, 백성과 소통해 개혁의 화두와 신뢰를 지키는 일이다. 공민왕이 남긴 가장 오래된 교훈은 어쩌면 바로 그것일 것이다.
다음주에는 '훈민정음에서 시작한 우리 글의 두 이름: 조선글과 한글'이 계속됩니다.
강형원씨 제공.
강형원기자는 코리안 아메리칸 포토저널리스트이자 칼럼니스트로, 로스앤젤레스타임스, AP통신, 로이터통신에서 활동했다. 1993년 코리안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데 이어 1999년 두 번째 퓰리처상을 받았다. 1995년, 1997년, 2026년 북한을 직접 취재했으며, 저서로 『민주화의 현장』, 『사진으로 보는 우리 문화유산』, 『성인의 길을 간 한국은 선비의 나라』가 있다. 현재 동국대학교에서 'Visual Literacy A to Z'를 강의하고 있으며, '비주얼 히스토리 오브 코리아'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 문명에 관한 지식과 시각 자료를 영어권 지식 기반에 편입시키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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