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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나약하고 가볍고 변덕스럽다는 속설에 대한 반론〉(아를, 2025)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가브리엘 쉬숑은 낯선 이름이다. 1632년,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쉬숑은 가족에 의해 열세 살부터 강제로 수녀원 생활을 하다가 마흔한 살이 되어서야 자유의 몸이 되었다. 세속으로 돌아온 그녀는 디종에 자리를 잡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생활을 꾸려가는 한편, 자신이 좋아하는 독서를 통해 그리스·로마 철학은 물론 당대의 여러 사상을 혼자서 섭렵했다. 그녀는 1693년 이번에 번역된 책과 〈윤리와 정치에 관한 논고〉를 한꺼번에 냈고, 1700년에는 결혼제도에 구속받지 않는 급진적 여성상을 제시한 〈자발 2014년 당좌대출이자율 적 독신에 대하여〉를 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남성에게는 설계도 즉 형상이라는 지위를 부여했고, 여성에게는 무정형의 재료 즉 질료라는 지위를 부여하는 것으로 남녀 위계를 설정했다. 쉬숑은 남성과 여성이 결코 다른 종이 아니며, 나약함·가벼움·변덕스러움은 환경과 개인의 기질에 따라 어느 누구에게나 나 서울보증보험 신용불량 타날 수 있음을 고전(古典)과 역사를 통해 낱낱이 밝힌다.


남자들이 믿고 있는 여성에 대한 속설은 많은 남자들이 자기 안에 있는 약점을 여성에게 전가하기 위한 악의적 조작이다. 아무리 못난 남성도 그보다 더 많은 약점이 있는 여성이 존재하는 한, 자긍심을 얻을 수 있다. 여성이 남성의 언어폭력(속 주택종합통장 설)에 굴복하는 이유는 “정신의 가장 큰 자산인 지식의 습득을 위해 필요한 학문적 수단이 차단된다든지, 정치와 권력으로부터 소외”되었기 때문이다. 최초의 페미니즘 선언서로 평가받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1792년 작 〈여권의 옹호〉(한길사, 2008)보다 100년이나 앞서 나온 이 책은 가히 페미니즘의 창세기(創世記)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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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출간된 알리에트 드 라뢰의 〈모차르트는 여성이었다〉(레모, 2024)는 20년 전 독일에서 출간된 에바 리거의 〈서양 음악사와 여성〉(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91)의 뒤를 잇는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1929)에서 셰익스피어에게 여동생이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에 관한 사고실험을 한 바 있다 3년 1억 . 주디스로 명명된 셰익스피어의 여동생은 강제로 약혼을 했으나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펼치고 싶어서 런던으로 도망쳤다. 울프의 상상 속에서 주디스는 여자라는 이유로 자신의 재능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잡지 못했고, 결국 절망하여 자살하고 만다. 주디스는 울프의 상상에 지나지 않았으나, 고전음악계에는 무수한 주디스가 실재한다. 모차르트의 누나 마리아 안나는 밀로스 포먼의 영화 〈아마데우스〉에 그림자조차 나타나지 않지만, 모차르트의 서간집을 보면 그녀가 피아노 연주와 작곡에 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낭만주의 남성 천재가 탈취한 것

드 라뢰는 고대 음악에서 바로크 시대에 이르기까지 여성이 연주와 작곡에 활발하게 참여했다고 말한다. 이런 성과는 중세의 유일한 음악 교육기관이었던 교회에서 여성이 노래하거나 오르간을 연주하는 것을 금했던 점에 비추어보면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지은이에 따르면, 여성의 음악 활동이 금지되거나 엄혹한 제한을 받게 된 것은 프랑스혁명(1789) 이후 성립된 근대사회에 들어서다. 펠릭스 멘델스존의 누나 파니 멘델스존, 로베르트 슈만의 아내 클라라 슈만, 구스타프 말러의 아내 알마 말러의 사례가 잘 보여주듯이, 이 비범한 “세 여성 작곡가에게 방해꾼은 남편, 아버지, 혹은 남동생이었다”.


서양음악사에서 최고의 천재로 숭앙받는 베토벤은 음악을 자신의 깊은 감정, 내면의 자아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생각한 최초의 작곡가이자 낭만주의의 문을 연 선구자다. 그런데 그가 열어젖힌 낭만주의는 지금까지 여성을 폄하할 때 동원된 감정, 즉 나약하고 가볍고 변덕스러움을 포함한(우울이나 민감함은 왜 아닐 것인가) 온갖 여성의 속성을 예술로 변환시킨 것이 아닌가. 이런 뜻에서 낭만주의 운동과 낭만주의가 만들어낸 남성 천재는 그동안 여성의 것이라고 알려진 자산(감정)을 남성이 탈취하고 전유한 별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책 80~85쪽에는 핵폭탄이 장치되어 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열렬한 애호가라면 단연코 이 책을 찢고야 말 것이다.


가브리엘 쉬숑이 그랬듯이, 〈여자는 왜 모래로 쓰는가〉(은행나무, 2025)를 지은 장혜령은 자신을 “아마추어 여성 독학자”라고 말한다. 오랜 시간 여성들이 쓴 다양한 양식의 텍스트를 읽어온 지은이는 독학자이자 〈발이 없는 나의 여인은 노래한다〉(문학동네, 2021)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여자들은 운동화, 샌들, 하이힐, 부츠를 마음대로 골라 신을 수 있다. 그런데도 발이 없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서양에서는 약 1000년간 여성이 다룰 수 있는 악기가 한정되어 있었다. 다리 사이에 끼우는 악기(첼로·비올, 연주법이 개량되기 이전의 하프)와 입으로 부는 모든 악기는 외설스럽다는 이유로 금지됐다. 피아노 같은 건반악기가 여성에게 허용된 이유는, 붙박이로 고정된 피아노가 여성의 이동성을 효과적으로 제한하기 때문이다. 읽기와 쓰기는 피지배자들에게 상상의 날개와 저항의 수단을 길러준다. 남성 가부장 사회가 여성에게 작문과 독서를 허락하지 않았던 이유이며, 지은이가 여성에게는 발이 없다고 말하는 이유다.


장혜령은 여성 텍스트를 읽는 중요성을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발이 없는 자에게도 신은 이야기의 발을 주시는 법이다.” 여성 텍스트는 아버지의 문자라는 영토를 거절한다는 점에서 음성적이고,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쓰는 동시에 다른 누군가를 향한 구원이기를 바란다는 특성이 있다. 여성의 글쓰기나 여성 텍스트가 자주 장르를 초과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에세이화한다고 해도 좋겠다). 장르는 오래된 관습이 만든 일종의 식민지이기 때문에 피식민 여성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여성적 글쓰기에 대한 지은이만의 관점이라면, 여성의 일상마저 텍스트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베란다 창틀 닦기, 파 다듬기, 국 끓이기, 과일청 만들기 같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출산과 제례에 이르기까지 여성이 몸으로 하는 모든 퍼포먼스는 음지에 숨은 여성 텍스트(작품 또는 글쓰기)의 기원이자, 여성 텍스트 자체이다. 여성의 일상은 텍스트화되지 않은 텍스트이며, 여성 텍스트가 종종 퍼포머화(化)한다는 지은이의 발견은 후속작을 기다리게 한다. 이 책과 엇비슷하게 나온 김지승의 〈마지네일리아의 거주자〉(마티, 2025)도 장혜령과 같은 기획을 공유한다. 두 사람은 차학경·다와다 요코·클라리시 리스펙토르와 같은 여성 저자만을 대상으로 음지에 묻힌 여성 문학사를 새로 쓰고 있다.

장정일 (소설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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