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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리블린 지음｜김동규 옮김｜RHK｜492쪽｜2만7000원
현대 인공지능(AI)의 시대는 뜻밖에도 실리콘밸리가 아닌 런던에서 시작됐다. 시리아계(系) 무스타파 슐레이만과 키프로스계 데미스 허사비스가 그 주인공이다. 남다른 실력의 포커 취미를 지녔던 두 20대 천재는 2010년 런던 카지노의 포커 대회에 나갔다 일찌감치 탈락하고는 다이어트 콜라를 홀짝이던 중 ‘학습하는 컴퓨터’의 비전에 대해 의기투합했다. 몇 달 뒤 런던 중심가가 내려다보이는 다락방 사무실에서 ‘딥마인드’가 문을 열었다. 이들은 처음부터 ‘범용 인공지능(AGI)’의 실현을 목표로 내걸었다. 인간에 필적하는 기계 두뇌라니, 다들 미쳤다고 했다.
“스타트업 창업은 절벽에 전세자금대출방법 몸을 던진 뒤 추락하는 동안 비행기를 만드는 것과 같다.” 탐사 보도 기자인 저자 게리 리블린은 이 책의 중심 인물인 ‘링크트인’ 창업자 리드 호프먼의 입을 빌려 스타트업의 희박한 성공 확률을 이렇게 비유한다. 딥마인드 역시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이들이 찾아낸 ‘구조 비행기’는 구글이었다. 구글에 회사를 매각한 뒤 구글 안에 들어가 돈 걱정, 사람 걱정 국제저축은행 없이 물 쓰듯 자원을 쓰며 ‘지능의 비밀을 푸는 일’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바둑의 이세돌 9단을 제압하며 전 인류에게 강렬한 ‘알파고 쇼크’를 던졌다.
그 무렵 또 한 명의 영웅이 AI 전쟁터로 뛰어들었다. 샘 올트먼이 ‘오픈AI’를 세운 것은 구글의 딥마인드 인수에 자극받았기 때문이었다. 사피엔스 종(種)의 운명이 걸 차량연비비교 린 AI의 미래를 영리 기업에만 맡겨 놓을 순 없었다. 기업 이익이 아니라 인류를 위한 AI라는 대안이 필요했고, 그러려면 독립된 비영리 조직이라야 했다. ‘알파고 쇼크’ 넉 달 전인 2015년 말, “수익에 얽매이지 않고” AI의 안전성에 주력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오픈AI가 출범했다.
문제는 역시 돈이었다. 막대한 컴퓨팅 비용, 치솟는 개인신용평가시스템 개발자 연봉에 천문학적 자금이 들었다. 올트먼은 오픈AI 산하에 영리 자회사를 둔다는 해결책을 생각해 냈다. 불가피한 선택이었으나 영리·비영리가 혼재된 조직 구조는 갈등의 씨앗을 내재하고 있었다. 2018년 오픈AI는 사람처럼 자연어로 대화하는 최초의 대규모 언어 모델(LLM)인 GPT-1을 선보여 인류를 또다시 충격에 빠트렸다. ‘AI 전쟁’의 개전을 알 주택 매매 세금 리는 총성이 울렸다. 이긴 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승자 독식의 전쟁이었다.
AI 개발사(史)는 ‘안전주의’와 ‘가속주의’ 간 대결의 역사였다. AI는 위험할 수 있는 존재다. SF 영화가 묘사하듯, 통제를 벗어난 AI가 인류를 위기에 빠트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래서 ‘안전주의’ 진영은 윤리·규제 장치를 만들어 가며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반면 ‘가속주의자’들은 위험성이 과장됐다며 인류에게 효용을 가져다줄 AI 개발에 더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현실을 놓고 보면 ‘가속주의’가 이길 수밖에 없었다. 한번 뒤처지면 끝장인 ‘AI 군비(軍備) 경쟁’의 속성상 개발을 늦춘다는 것은 패배를 헌납하는 것을 뜻했기 때문이었다. ‘안전주의’ 측은 오피니언 리더들이 서명한 경고 성명을 두 차례에 걸쳐 발표했지만 ‘AI 휴전’에 응한 빅테크는 한 곳도 없었다. 인류 절멸 가능성을 언급하며 성명에도 참여한 일론 머스크조차 한편에선 AI 기업을 만들어 천문학적 투자를 퍼부을 지경이었다.
모순되기는 올트먼도 마찬가지였다. 애초 ‘안전한 AI’를 내걸었던 그는 갈수록 수익과 성장 추구로 방향을 틀어 갔다. 그는 “1등이 아니면 아무리 정의를 떠들어도 소용없다”고 스스로를 변호했다. 급기야 ‘안전주의’ 인사들이 장악한 오픈AI 이사회가 그를 해임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상반되는 가치 진영이 충돌한 모양새였는데, 결국 승리는 올트먼 몫이었다. 직원들이 올트먼 지지를 선언하면서 쿠데타는 실패로 돌아갔다. 개발 경쟁에서 이겨야 안전성도 지킬 수 있다는 ‘가속주의’ 논리가 이긴 것이었다.
퓰리처상 수상자인 저자는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지 않는다. 테크 업계의 거인들이 AI 패권을 둘러싸고 벌이는 숨 가쁜 경쟁과 공방, 합종연횡의 포연 자욱한 현장을 기자다운 세밀한 취재력으로 생생하게 묘사할 뿐이다. 박정훈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