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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캄보디아는 억울하다고 했다.

최근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납치·고문에 살인까지 강력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우리 정부가 지난 16일 0시부터 캄보디아 일부 지역에 대해 여행경보 4단계 ‘여행 금지' 조치를 내리는 등 부정적인 인식이 커지자 나온 반응이었다.
일단 캄보디아 정부는 한국 여성을 앞세운 영상을 잇따라 올리면서 “뉴스에서 보는 게 전부가 아니다. 평화롭고 따뜻한 나라”라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인 대상의 범죄가 발생한 건 "한국 탓"이라는 관광 업계 관계자도 있었다. 알라딘게임

이들의 호소를 확인하기 위해 캄보디아 현지 교민에게 묻고 국제단체의 관련 보고서 등을 찾아봤다. 캄보디아의 호소는 진실과 거짓, 그 어디쯤에 자리하고 있었다.


'스캠' 온상된 캄보디아, '살아있는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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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범죄단지 '태자단지'에 남아있는 생활흔적. /사진=연합뉴스



지난 2022년 8월 미 국무부는 연례 인신매매 보고서에서 캄보디아의 인신매매 수준을 가장 낮은 등급으로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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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특별보고관인 비팃 문타르본 교수는 2022년 인신매매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캄보디아의 주요 범죄 지역인 시아누크빌을 찾은 뒤 사람들이 구금된 곳을 '살아있는 지옥'이라 표현했다.
캄보디아는 어쩌다 최악의 인신매매 국가가 됐을까. 캄보디아 교민들은 정치적·경제적·역사적 배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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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가까이 수도인 프놈펜에서 살고 있는 장완익 선교사는 "캄보디아는 입헌군주국이지만, 한때 사회주의 국가였다보니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미국보다 중국에 의지하고 영향을 많이 받는다"면서 "그러면서 캄보디아 권력층은 중국계 범죄조직과도 유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한인회 김대윤 부회장도 비슷한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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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부회장은 "오래 전부터 중국계 범죄조직들이 캄보디아에 진출해 자리를 잡으면서 정·관계와 경제계에서 중심 역할을 하게 됐고 고위층과도 끈끈한 관계를 쌓았다"면서 "이 과정에서 금전이나 개인정보 등을 편취하는 '스캠' 범죄를 저지르는 중국계 불법 온라인 기업들까지 참여해 규모와 세력이 더 커졌다"고 전했다.
문타르본 교수도 2022년에 이어 지난 7일 캄보디아 인권 상황을 알리는 새로운 보고서에서 범죄조직과 연결된 캄보디아 권력층을 짚었다.
문타르본 교수는 "최근 몇 년간 캄보디아는 자유롭지도, 공정하지도 않은 선거를 치르면서 야당의 세력은 약화됐다"면서 "2023년 취임한 훈 마넷 총리는 세대교체라 홍보했지만, 아버지 훈센의 뒤를 이은 것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건국공신이라 불리는 특정 파벌이 권력을 독점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엔과 함께 국제단체들도 비슷한 지적을 했다.
지난 6월 국제 앰네스티 보고서는 사실상 캄보디아 정부가 범죄를 방치했다고 적었다. 시아누크빌, 프놈펜 등을 포함해 16개 지역, 53곳에 달하는 범죄 집단 중 33곳은 군·경 단속에도 정상 운영하고 있었다.
보고서는 "단속으로 폐쇄된 곳은 단 두 곳 뿐이고, 18곳은 단속조차 하지 않았다"고 했다.
피해자들도 앰네스티에 "조직원들이 단속을 미리 알고 우리를 버스에 태워 다른 곳으로 보냈다"거나 "신고를 받고 온 경찰은 문앞에서 신고자만 데리고 갔다"고 증언했다. 특히 "경찰이 구출한 피해자들을 이민자구금센터에 가둬놓고 뇌물을 요구한 뒤 답이 없으면 인신매매 조직에 다시 넘겼다"는 사례가 기록되기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이 방치를 넘어 범죄조직과 유착돼 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미국 인신매매방지법(TIP) 보고서에도 "다양한 형태의 인신매매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공무원들이 조사를 받지 않고 있다"며 '만연한 부패'를 법 집행의 걸림돌로 지목했다.
셈 속헹 캄보디아 한국관광가이드협회장이 “희생자들은 대부분 불법 일자리에 지원한 사람들”이라며 “한국 정부가 (사기)범죄와 관광을 구분하지 않은 점이 안타깝다”고 한 말이 비판 받는 이유다.

프놈펜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A씨는 "집에 도둑 들었는데 문 단속 못한 피해자 나무라는 거랑 뭐가 다르냐"며 꼬집었다.


'우리' 모두가 '함께' 풀어야 할 문제






지난 2월 미얀마 동부 미야와디 지역의 구금 시설에서 풀려난 후 구금 시설에서 인신매매되어 강제 노동을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 베트남, 에티오피아 출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쓴 채 앉아 있다. /사진=유엔 특별인권위원회 X 계정



지난 2022년 영국 가디언은 대만, 중국, 홍콩, 마카오, 베트남 경찰이 자국민을 구출하고 인신매매 조직을 근절하기 위해 캄보디아에서 대대적인 작전에 나선 내용을 보도했다.

올해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미국 공영라디오 npr은 지난 2월 태국, 중국, 미얀마 경찰이 태국 국경과 인접한 미얀마 동부에서 구출 작전에 나섰다고 전했다.
시점은 달랐지만, 두 작전의 타깃이 된 범죄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폭력조직인 삼합회와 연계돼 있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주로 젊은 아시아계 사람들을 인신매매 했다.
고소득 일자리와 숙박을 제공하며 캄보디아, 태국, 미얀마, 라오스 등 전역에서 일한다는 홍보글만 믿고 찾아온 사람들은 여권을 뺏기고 여러 단체에 팔려나가 사무실에서 로맨스 스캠 등 온라인 사기를 치는 일을 했다.
2022년 캄보디아 작전에서 가장 많이 구출된 피해자 국적은 베트남과 대만 출신이 많았고 중국, 홍콩, 마카오 출신도 있었다.
올초 미얀마에서 진행된 구출 작전에는 1000명 이상의 중국인이 구출됐다. 케냐 등 아프리카를 포함해 20개국 출신의 피해자가 구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선 두 사례를 보면 스캠을 위해 납치, 구금, 고문하는 범죄조직이 캄보디아에서만 활동하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범죄대상 역시 국적을 가리지 않았다.
지난 2023년 유엔이 사기 센터로 운영하는 범죄조직의 활동 무대를 '동남아시아' 전역이라고 쓴 이유다.
캄보디아 쪽에서 "왜 우리만"이라는 항변이 나올만한 대목이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 북쪽에 있는 사기 농장엔 수 백 명의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다. /사진=유엔 홈페이지



유엔 인권사무소는 캄보디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범죄조직의 활동 무대가 된 건 코로나 팬데믹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국가간 국경이 막히면서 여행 수요가 줄자 카지노가 폐쇄됐고 범죄조직들은 새로운 돈벌이로 스캠을 주목했다.
그리고 규제는 덜한 데다 정치권과의 유착이 가능한 동남아시아로 이전하게 됐다고 봤다.
실제 한 피해자는 영국 BBC방송에 태국 공항에서 이민국 직원들이 범죄조직과 내통하고 있는 걸 목격했다고 알렸다. 자신을 태운 범죄조직의 차량이 미얀마 군부의 묵인 하에 국경을 넘나들었다는 피해자 증언도 나왔다.
이러다 보니 범죄조직을 완벽하게 단속한다는 건 쉽지 않다는 암울한 전망이 나왔다. 한 곳을 단속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일종의 '풍선효과'를 우려하기도 했다.
김 부회장도 "중국계 범죄조직들은 해외 시장에 나가면서 태국이나 베트남, 필리핀 등에 먼저 진출했다. 그러다 정부가 범죄조직에 강력 대응하면서 쫓겨나자 대안으로 찾은 곳이 바로 캄보디아"라고 설명했다.
최근 한국을 통해 캄보디아가 집중 조명되자 범죄조직들이 밤늦게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17일 온라인상에 올라오는 캄보디아행 불법 구인 광고물을 긴급히 삭제하라고 관계 기관에 지시하고 하루 만에 대상을 동남아 전체로 확대했다.
전 세계가 범죄조직에 공동 대응하기 위 고민해야 할 때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평화 연구소(USIP) 미얀마 지부장인 제이슨 타워는 2022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세계적인 문제"라고 단언했다.


"따뜻한 나라"…맞지만 조심






캄보디아 내무부가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한국인 A씨와 B씨의 영상. /사진=뉴시스



지난 15일 캄보디아 내무부 공식 SNS 계정엔 한국인 여성을 촬영한 영상이 올라왔다.

이 여성은 한국말로 “프놈펜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산 지 벌써 13년"이라고 소개한 뒤 "최근 뉴스에서 캄보디아에 대한 걱정스러운 이야기들이 자주 들리지만, 사실 많이 다르다. 캄보디아는 평화롭고 사람들 마음에는 따뜻함이 가득한 나라"라고 말했다.
같은 날 비슷한 내용의 또 다른 영상도 게재됐다.
현지 교민들도 캄보디아 범죄조직의 활동만 봐서는 안 된다고 했다.
장 선교사는 "모르는 사람이나 텔레그램의 제안으로 캄보디아에 오는 일은 없어야 한다"면서도 "거주지가 확실하고 업무나 학업 등 할 일이 명확하다면 캄보디아에선 나쁜 일이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주의할 부분이 있다. 프놈펜에서 사업하는 박씨는 "안타깝지만, 한국인을 피해자로 만드는 건 범죄조직에 가담한 한국인들"이라며 "이들이 공항에서 접근해 유인할 수도 있다. 모르는 사람이 '가이드 해 주겠다'는 식으로 친절을 가장해 다가온다면 그냥 회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강조했다.
y27k@fnnews.com 서윤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