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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아메리칸 팩토리’ 전략을 노골적으로 추진 중이다. 조선 등에서 한국을 제조업 파트너로 삼겠다고 선언한 핸드폰 회선조회 것도 한국 대학과 기업이 쌓은 과학과 공학 역량 덕분이다. 이랬던 한국이 의대 쏠림으로 스스로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지만 네덜란드는 다르다.



델프트공대 산업디자인공학부 학생들이 미래 모빌리티 디자인에 적용될 자동차 유체역학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델프트=강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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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SML을 탄생시킨 개방적 경쟁



네덜란드 델프트공대 전경


스히폴공항에서 기차를 타고 40분 가면 로테르담 인근 소도시 델프트에 도착한다. 이곳에 유럽을 대표하는 출력 공대 중 하나인 델프트공대가 자리잡고 있다. 방문일에 때마침 기계공학부 개강 행사인 인트로위크가 열렸다. 행사장인 델프트공대 아트센터에 들어서자 유기농 치즈 냄새 가득한 전원 풍경이 펼쳐졌다. 드넓은 평지를 얕게 흐르는 수로와 마구간까지 갖춘 아트센터에서 맥주잔을 들고 공학 방정식과 기계 도면을 게임하듯 논의하는 학생들을 보니 세계 최정상급 천재들의 공간 인터넷대학 한복판에 와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유스트 헤르더르 델프트공대 기계공학부 정밀마이크로시스템공학과 학과장은 “인트로위크는 석사 과정 입학생에게 학과가 무슨 연구를 하는지 알리는 자리”라며 “기업 관계자들이 참석해 학생들이 수행할 연구가 기업 현장에서 쓰일 수 있다는 점을 소개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연구 트랙을 잘 설정하도록 돕기 위해 ibk환승론 산학 협력을 학기 초부터 강조하는 셈이다.
이날 인트로위크의 주인공은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의 최상단에 자리한 네덜란드 국민기업 ASML이었다. 마르틴 판하스텐베르흐 ASML 엔지니어가 “미래의 ASML 인재가 이곳에 있을 것 같다”고 분위기를 띄우자 한국과 네덜란드 독일 이탈리아 중국 인도 등 다양한 국가에서 온 학생들은 질문 세례로 화답했다. 헤르더르 학과장은 “미국과 달리 네덜란드는 학부과정 3년, 석사 2년”이라며 “네덜란드의 강점인 ‘하이테크 인더스트리’가 박사급 전문 인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고도화한 학제 시스템을 운영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작년 개설한 정역학(靜力學) 수업에 900여 명이 수강 신청을 했다”며 “델프트공대 역사상 이 정도로 큰 클래스가 열린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네덜란드의 기계공학 열풍은 의대 광풍에 휘청이는 국내 공대 상황과 반대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내로라하는 수재들이 서울대 등 주요 공대를 택했다. 최근에는 의대 열풍으로 기계공학이 위축됐다. 양지은 델프트공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네덜란드에서 기계공학은 예나 지금이나 최고 인기 전공”이라며 “졸업 전 취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사회적 대우도 높아 공대가 외면받는 한국과는 180도 다르다”고 말했다.
 ◇필립스의 유산 ‘오렌지 테크’
네덜란드에서 어떻게 기계공학이 가장 인기 학문이 될 수 있었는지 묻자 단번에 ‘필립스’라는 답이 나왔다. ASML을 비롯해 네덜란드 산업계를 지탱하는 NXP, 엠플레온, 베시, 니어필드, 악셀레라AI, 시그니파이 등의 회사는 모두 필립스라는 큰 나무에서 뻗어 나온(스핀오프) 기업이다. 헤르더르 학과장은 “100년 전 필립스가 전구, TV, CD플레이어 등 각종 가전제품을 만들면서 네덜란드에 거대한 산업 생태계가 형성됐다”며 “필립스 엔지니어들이 델프트공대를 비롯해 에인트호번, 트벤터공대로 넘어가 교수로 활동하면서 네덜란드 인재 양성의 변곡점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연구소의 뿌리도 필립스인 경우가 많다. ASML과 네덜란드 정부가 함께 설립한 극자외선(EUV) 연구소인 ‘ARCNL’, 포토닉스 패키징을 연구하는 ‘CITC’, 헬스케어와 첨단 기술의 융합을 연구하는 ‘노비오테크’ 등이 필립스의 유산이다. 헤르더르 학과장은 “필립스의 나튀르퀸더흐연구소(NATLab)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한 연구를 많이 했다”며 “이것이 네덜란드 하이테크 타운인 브레인포트의 자양분이 됐고, 반도체 경쟁력 강화로 이어졌다”고 했다.
반도체 전자회로의 세계적 석학인 코피 마킨와 델프트공대 전자공학부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학과 학과장은 “간섭 없는 지원이 기업 성장의 핵심”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네덜란드는 메이크넥스트플랫폼(MNP), 하이테크XL, 딥테크XL 이니셔티브를 통해 혁신 기업에 기술을 이전하고 자금을 제공한다.
딥테크 벤처 촉진 프로그램인 하이테크XL은 유럽우주국, 필립스 등의 기술을 활용해 벤처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벤처캐피털 펀드인 딥테크XL은 ASML, 필립스, 네덜란드 응용과학연구소 등 파트너들과 협력해 딥테크 생태계 강화에 도움을 준다. 선발 과정은 깐깐하지만 이후엔 간섭을 최소화하며 연구의 자유를 부여해 성과를 독려한다.
헤르더르 학과장은 “네덜란드에는 출혈적 경쟁 대신 개방적 경쟁을 장려하는 ‘오픈 컴피티션’이라는 개념이 있다”며 “때로는 경쟁사와도 손잡는 오픈이노베이션을 추구했기 때문에 ASML 같은 기업이 탄생했다”고 말했다. 지나친 경쟁보다 자신감 함양이 인재 양성의 핵심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델프트=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