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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모더니즘의 선구자 하종현 작가(90)의 예술세계를 망라한 ‘하종현 아트센터’가 경기 파주시 문발동에 9월 1일 문을 연다. 1960년대부터 그가 실천한 예술 철학, 실험 정신이 담긴 작품 54점이 4개 관에 걸쳐 전시된다. 지난 29일 개관에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는 하 작가도 잠시 참석해 인사를 나눴다. 하 작가는 “평생을 걸쳐 준비한 공간”이라며 “오늘이 인생 최고의 날이라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하 작가는 회화에 대한 지속적인 물성 탐구 및 실험에 매진하면서 새로운 추상화의 길을 열어온 상징적인 인물이다.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그의 이 집합명사 름은 ‘접합’이라는 작업과 함께 묵직한 무게감을 지닌다. 접합 연작은 1974년 이후 탄생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마대 캔버스 뒷면에서 앞면으로 물감을 밀어내는 독자적인 기법인 ‘배압법(背押法)’을 쓴 게 특징. 2009년부터는 접합을 확장한 ‘이후 접합’ 연작을 내놓으면서 회화를 대하는 기존의 태도를 전복시킨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정품브랜드 “예술은 작가만의 것이 아니라 감상자와의 소통을 통해 완성된다”는 게 하 작가의 평생에 걸친 신념이다.
하종현 아트센터의 연면적은 2967㎡(약 897평), 4개 층 규모다. 출판사 열린책들의 자회사 미메시스가 사용하던 사옥을 인수해 건립했다. 인테리어 공사를 크게 하지 않을 정도로 하 작가가 공간을 마음에 들어 했다고 전해진다.
모기지융자제1전시장에 들어서면 높은 층고의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하 작가의 대표 시리즈인 ‘접합’ 작품들이 전시됐는데, 2010년대 중반 이후에 작업한 것 위주로 채웠다. 1층 전시관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대형작 ‘접합 2-200’(2020)은 다양한 물성과 규모를 자랑한다. 벽면의 회화와 바닥에 놓인 철조망과 거친 천이 한데 모였다. 이 작품 앞에서 창업진흥원면접 아트센터 관계자는 “하종현 작가는 회화의 본질을 해체하는 데 평생을 바친 실험가”라며 “한국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걸 중시했다”고 설명했다. 군사분계선과 가까운 도시의 전시 공간, 6·25전쟁의 아픔을 겪은 작가가 철조망을 엮어 만든 이 작업에는 많은 이야기가 깃들어 보였다.
2층 이후부터는 하 작가가 한국 근현대사의 영향을 받으 하나sk카드 며 깊이 사유한 결과물을 조명했다. 접합 연작이 시작되기 전, 앵포르멜과 기하추상 작업에 천착한 시기(1960~1969년),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 시기(1969~1975년)로 나뉜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시기적으로 암울했던 정치 상황 속, 상징적인 고발을 표방한 결과물을 만날 수 있다. 제3전시장에는 다양한 시기의 접합 연작을 한자리에서 선보이고, 제4전시장에서는 수직과 수평을 오가는 ‘이후 접합’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하종현 아트센터 관계자는 “작가 개인의 아카이브와 전시뿐 아니라 강연, 세미나, 연구 프로그램 등을 구성해 동시대 예술 담론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겠다”고 말했다. 개관일에는 제14회 하종현미술상 시상식도 열린다. 이배, 권여현, 서성록, 남춘모 등 20여 명의 작가가 거쳐간 미술상이다. 올해는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예술감독과 미술사학자이자 큐레이터로 활동 중인 애슐리 롤링스가 수상자로 선정됐다.
1935년 경남 산청 출생인 하 작가는 1959년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한 뒤 홍익대 미술대학 학장(1990~1994)과 서울시립미술관 관장(2001~2006)을 지냈다. 현재 경기 고양시 일산에서 거주하며 작업한다.
파주=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