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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호영래나 댓글 0건 조회 1회 작성일 26-09-23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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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자료 추석 밥상에 올라오는 햅쌀밥은 낯익은 풍경입니다. 잘 익은 벼가 황금빛으로 물든 들판도 ‘우리 고향’의 전형적인 이미지입니다. 그런데 그 논에 심은 벼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우리가 맛있다고 느끼는 ‘밥맛’은 언제부터 만들어진 것일까요. 전통은 아주 오래전부터 변하지 않고 이어진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과 테런스 레인저는 1983년 펴낸 <만들어진 전통(The Invention of Tradition)>에서 오래된 것처럼 여겨지는 관습 상당수가 실제로는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졌다고 지적했습니다. 쌀과 밥맛도 이 질문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1906년 미국인 윌리엄 엘리엇 그리피스가 쓴 <은자의 나라 한국>에는 조선 사람들이 한꺼번에 많은 밥을 먹는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노동자가 한 끼에 먹는 쌀의 양을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게 묘사했습니다. 외국인 관찰자의 기록을 당시 조선인 전체의 식사량으로 일반화하기는 어렵습니다. 큰 밥그릇이 사용됐고, 지금보다 식사에서 곡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던 것은 여러 자료에서 확인됩니다. 2011년 취재 당시 음식사학자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도 영양 섭취의 상당 부분을 밥에 의존했기 때문에 지금보다 밥을 많이 먹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식사량’에 한정하면 특히 지난 30년 동안 사정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졌습니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5년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3.9㎏입니다. 1995년 106.5㎏의 절반 수준입니다. 이제 한국인은 쌀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쌀을 덜 먹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먹는 양만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먹는 쌀 자체도 계속 바뀌었습니다. 1913년 권업모범장이 펴낸 <조선도품종일람>에는 한반도에서 재배하던 벼 1451종이 기록돼 있습니다. 논에서 기르던 메벼 876종과 찰벼 383종, 밭에서 기르던 메벼 117종과 찰벼 75종입니다 황금성게임앱 . 경기지역의 노인벼·자채벼·소하벼, 전라도의 팥벼·해남벼·은모레기찰처럼 이름부터 낯선 벼가 전국 곳곳에 있었습니다. 1451이라는 숫자를 오늘날의 유전적으로 구별되는 ‘1451개 품종’과 정확히 같은 뜻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지역마다 같은 벼를 다른 이름으로 부른 경우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당시 한반도의 벼가 지금보다 훨씬 다양했고, 지역의 기후와 토질에 맞는 재래종을 농민들이 대대로 골라 심었다는 .입니다. 그 다양성은 20세기에 급격히 줄었습니다. 1906년 설치된 권업모범장은 근대적인 농사시험과 품종 선발을 시작했습니다. 일제강。기에 들어서면서 조선총독부는 일본에서 육성한 이른바 ‘우량품종’을 적극적으로 보급했습니다. 1920년부터는 산미증식계획을 추진했습니다. 수리시설과 농업기술을 확대해 쌀 생산량을 늘리고 일본으로 보내는 것이 식민농정의 핵심 정책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후속 연구에서도 당시 총독부가 농업기술 관료조직을 크게 확대해 이 사업을 수행한 과정이 확인됩니다. 그렇다고 당시 조선인들이 늘어난 쌀을 흰쌀밥으로 먹었던 것은 아닙니다. 2019년 이송순의 연구에 따르면 조사자료에서 쌀만을 주식으로 먹는 조선인은 13%에 그쳤고, 나머지는 보리나 잡곡을 섞어 먹었습니다. 쌀 생산량은 늘었지만 1인당 쌀 소비량은 감소했습니다. 지역과 계층에 따라 차이는 컸습니다. 쌀의 상품화가 빠르게 진행된 남부 농촌의 소작농과 영세농에게 그 부담이 특히 컸습니다. 2011년 기사에서 “농민들은 쌀을 팔고 보리를 먹었다”고 단순하게 정리했던 대목은 이렇게 설명하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재래종의 재배면적도 빠르게 줄었습니다. 릴게임예시 농촌진흥청 자료에 따르면 1912년 전체 벼 재배면적의 97%를 차지하던 재래종은 1923년 33%, 1928년 22%로 감소했습니다. 일제강.기와 해방 이후 생산량을 중시한 품종 교체를 거치며 농가에서 재배하는 토종벼는 거의 자취를 감췄습니다. 해방 뒤에도 당면한 문제는 ‘맛’보다 ‘양’이었습니다. 전쟁을 겪은 한국은 만성적인 쌀 부족에 시달렸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한 상징적인 품종이 통일벼입니다. 허문회 박사가 국제미작연구소(IRRI)에서 연구하던 1960년대 중반 일본 자포니카 계열의 유카라와 인디카 계열의 타이중 네이티브1을 교배한 뒤 다시 IR8을 교배했습니다. 여기서 만들어진 계통을 토대로 1970년대 초 통일벼가 보급됐습니다. 당시 일반 자포니카 품종보다 수확량을 30% 이상 끌어올렸고 한국이 쌀 자급을 이루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대신 약.도 뚜렷했습니다. 밥맛이 기존 자포니카 쌀과 달랐고 저온에도 약했습니다. 2024년 국립식량과학원 연구진은 통일형 품종이 자포니카보다 20~40% 수량이 많지만 저온에 더 민감하다고 정리했습니다. 1970년대의 육종 목표는 맛있는 쌀보다는 많이 나는 쌀이었습니다. 쌀 자급을 달성하자 기준이 바뀌었습니다. 농촌진흥청 연구진이 2020년 정리한 한국 벼 육종사를 보면 1980년대부터 육종의 중심은 수량에서 ‘쌀의 품질’로 이동했습니다. 이제 소비자가 얼마나 많이 생산되느냐보다 얼마나 맛있느냐를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틈에서 강력한 기준이 된 품종이 추청입니다. 일본 이름은 ‘아키바레(秋晴)’입니다. 일본에서 육성돼 1969년 한국에 도입됐습니다. 키가 크고 도열병에는 약했지만 밥맛이 좋았습니다. 통일벼의 밥맛에 익숙하지 않았던 소비자들에게 특히 경기미의 대표 품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2011년 취재 당시 최해춘 박사는 “통일벼가 수량은 많이 나는데 밥맛이 떨어지니까 ‘경기미의 대표’로 인식되면서 추청이 살아남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알라딘게임랜드 . 당시 기사에는 “우리가 지금 먹는 쌀의 품종은 대부분 일본 품종끼리 교배해 나온 것이 사실”이라는 그의 말도 실렸습니다. 당시 한국의 고급 밥쌀용 품종에 일본 품종이 미친 영향은 그만큼 컸습니다. 그 뒤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금은 상황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1992년 10월 16일 등록한 ‘소로 논갈이를 하는 풍경’이라는 제목의 사진. 21세기에 들어선 현재는 거의 자취를 감춘 농사방법이다. 모내기를 위해 소가 끄는 쟁기로 논을 갈고, 써래질을 하는 농부의 모습이라고 당시 사진설명은 되어 있다. 경향자료 2020년 한국육종학회에 발표된 연구는 1980년부터 2017년까지 국내에서 육성된 벼 325품종의 계보를 분석했습니다. 1980년대 교배에 사용한 부모 계통 가운데 국내 육성품종의 비율은 45.5%였고 일본 계통은 39.4%였습니다. 2010년대에는 국내 계통이 72.8%로 높아지고 일본 계통은 17.4%로 낮아졌습니다. 일본 계통 가운데 고시히카리·히토메보레·기누히카리 등이 주로 밥맛을 개선하기 위한 육종 소재로 쓰였습니다. ‘일본 품종의 밥맛’을 그대로 받아들였다기보다 그 특성을 국내 품종 육성에 활용하면서 다시 섞고 선발해온 역사에 가깝습니다. 논에서 직접 재배하는 일본 품종도 빠르게 줄고 있습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국내 외래 벼 재배면적은 2017년 8만2952㏊로 전체의 11%였지만 2024년에는 2만8000㏊ 이하, 4%대로 떨어졌습니다. 이천에서는 고시히카리를 2020년 ‘해들’로, 추청을 2022년 ‘알찬미’로 전면 교체했습니다. 한때 ‘경기미=추청’으로 통했던 공식도 깨지고 있는 셈입니다. 15년 전 기사에서 제기했던 또 하나의 질문도 흥미롭습니다. 사라진 재래종을 다시 육종에 이용할 수 없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바일 야마토게임 연타 당시 최 박사는 재래종에는 키가 크거나 병에 약한 단。이 있지만 가뭄과 불리한 환경에 강한 형질도 있어 다시 평가하면 중요한 육종 소재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경기도농업기술원이 2014년 개발한 ‘참드림’은 국내 재래종 ‘조정도’의 혈통을 삼광에 도입해 만든 품종입니다. 연구 결과 단백질 함량이 낮고 추청보다 밥맛 평가가 좋았습니다. 경기도는 추청을 대체하는 품종 가운데 하나로 참드림을 보급했습니다. 2011년 기사에서 예상했던 ‘재래종의 부활’이 유전자원을 현대 품종에 다시 넣는 방식으로 현실화된 사례입니다. 유전자원을 보는 방법도 달라졌습니다. 농촌진흥청 유전자원센터가 보유한 2만5604。의 벼 유전자원을 대표하도록 137。을 추려 유전체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1500만개가 넘는 단일염기다형성(SNP)이 확인됐습니다. 과거에는 재래종을 종자로 보관했다면 이제는 어떤 유전자가 가뭄·추위·병 저항성이나 밥맛과 연결되는지를 찾아 육종에 활용하는 단계로 넘어간 것입니다. 토종벼를 모두 되찾은 것은 아닙니다. 2023년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유전자원센터를 취재했을 때 센터가 보유한 재래종 자원은 1449.이었습니다. 잡초형까지 합친 토종 벼자원은 7496.이었습니다. 1913년 <조선도품종일람>에 기록된 이름과 정보가 현재 보존된 자원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40개에 불과했습니다. 이름만 남고 씨앗이 사라졌거나, 씨앗은 있지만 옛 이름과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밥맛’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현재의 식미 연구는 이를 민족의 입맛 같은 추상적인 말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쌀의 아밀로스와 단백질 함량, 아밀로펙틴 구조, 전분의 호화온도 등이 밥의 찰기와 경도, 윤기에 영향을 줍니다. 특히 Wx 유전자는 아밀로스 함량을, SSIIa 유전자는 호화 특성을 결정하는 핵심 유전자로 연구되고 있습니다. 재배 때의 기온과 비료, 수확 뒤 저장조건도 밥맛을 바꿉니다. 야마토게임 연타 한국과 일본 사람들이 선호하는 부드럽고 찰기 있는 자포니카 쌀에도 이런 유전적 특성이 있습니다. 20세기 한국의 ‘좋은 밥맛’ 기준을 만드는 과정에서 일본 육성품종이 큰 영향을 준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지금의 한국인 입맛을 단순히 “일제강.기에 일본인의 입맛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해방 이후 통일벼 시대를 거쳤고, 추청과 고시히카리가 고급쌀의 기준이 됐으며, 다시 국내 육성품종이 그것을 대체했습니다. 소비자의 선택과 육종가의 선택이 반복됐습니다.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국경 자체가 무의미해집니다. 최근 고고학 연구는 기원전 1천년기 한반도에서 건너간 농경 집단이 일본열도에 벼농사를 전한 주요 경로였음을 다시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현대 일본 품종인 고시히카리나 추청이 곧바로 한국 재래종의 후손이라고 말할 근거가 생긴 것은 아닙니다. 2011년 기사에서 소개했던 “일본 벼 품종이 한국 재래종을 가져가 개량한 것 아니냐”는 추정은 현재 연구만으로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벼의 이동과 현대 품종의 육종 계보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15년 전 기사는 “우리가 맛있다고 느끼는 밥맛도 일제강。기 이후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으로 끝났습니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밥맛은 하나의 시.에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지역마다 달랐던 수많은 재래종 위에 일제강.기의 품종 교체가 있었고, 전쟁 뒤 식량난과 통일벼가 있었습니다. 쌀이 남기 시작하자 밥맛 좋은 일본 품종이 기준이 됐습니다. 다시 국내 육종가들은 그 기준을 받아들이고 변형하면서 새로운 품종을 만들었습니다. 최근에는 사라졌던 재래종의 유전자까지 다시 꺼내 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전통적인 밥맛’이라고 생각하는 맛도 그렇게 만들어져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 [특집]우리의 ‘밥맛’은 어디서 왔을까 https://weekly.khan.co.kr/article/531 ☞ “토종벼 연구는 자원주권 찾는 길” https://weekly.khan.co.kr/article/151 개선제 복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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