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포용 대신 배제와 격리를 강화한 새 이민 정책을 도입한다.
2015년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우리는 할 수 있다”며 시리아 난민을 대거 받아들인 지 정확히 10년 만이다. 유럽 각국에서 이민자와 관련한 사회 문제가 터지고 반(反)이민 정서를 등에 업은 강경 보수 세력이 득세하자, 개방에서 통제로 전환이 불가피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지난 8월 프랑스 북부 그라블린 해변에서 영국 해협을 건너려는 이주민들이 밀입국 선박에 탑승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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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현지시각) 로이터와 폴리티코 등에 따르면 EU 27개국 내무장관들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이사회에서 ‘불법 체류자 송환 규정 개정안’ 도입에 최종 합의했다.
개정안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망명 신청을 거부당하거나, 체류 자격이 없는 이주민을 EU와 협정을 맺은 제3국 수용 시설 ‘송환 허브 바다이야기다운로드 (return hubs)’로 보낼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송환 허브는 쉽게 말해 유럽 바깥에 마련한 ‘이주민 대기소’다. 이주민이 유럽 본토에 발을 들이기 전, 혹은 추방 결정이 내려진 후 본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머무는 시설이다. 이탈리아가 알바니아에, 영국이 르완다에 추진했던 모델을 EU 전역으로 확대한 것이다. EU는 튀니지 릴짱 같은 인근 제3국가와 협정을 맺고 수용 시설을 마련할 예정이다.
앞서 2023년 11월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알바니아와 협정을 맺고, 알바니아 북서부 셴진 항구와 인근 갸데르 지역에 이주민 수용소 2곳을 지었다. 이 시설들은 지난해부터 운영을 시작했다. 주로 지중해에서 배를 타고 이탈리아로 향하는 불법 이주민들이 해안경비대에 구 오리지널골드몽 조된 후 이들 수용소로 직행한다. 수용소는 각 이주민들에게 망명 신청을 받아 28일 이내에 이탈리아 입국 허용 또는 본국 송환 여부를 결정한다. 망명이 거부된 경우, 최대 18개월까지 구금할 수 있다.



지난달 1일 알바니아 갸데르에 위치한 이탈리아가 운영하는 난민 수용소에서 릴게임오션파라다이스 경찰이 경계를 서고 있다. /연합뉴스


EU는 그동안 2008년 제정한 송환 지침에 따라 불법 이주민에게도 자발적 귀환을 권했다. 불법으로 유럽에 넘어왔어도 1주에서 4주간 출국 기한을 부여하고, 그 기간 내에 자발적으로 본국으로 돌아가면 추가 제재를 하지 않았다.
이번 개정안은 강제성을 대폭 강화했다. 일단 불법 이주민으로 분류되면 즉시 구금될 수 있다. 도주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구금 기간은 늘어난다. EU 이사회는 이날 보도자료에서 “불법 체류자를 효과적으로 송환하기 위해 회원국 간 협력을 강화한 것”이라고 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EU 리더들은 법적 논란보다 당장 눈앞의 표심(票心)이 더 급하다”며 “이들은 송환 허브 구축을 불법 이민자들을 막을 ‘유일한 대안’으로 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 10월 영국 런던 중심부 웨스트민스터에서 열린 반이민 시위 참가자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또 EU는 내년부터 이주민 분담 펀드(solidarity pool)를 가동해 불법 이주민이 주로 입국하는 국가들을 돕기로 했다. EU는 그동안 폴란드나 헝가리처럼 이주민 수용 거부를 외치는 동유럽 국가들과 갈등을 빚었다. 이 펀드는 이런 갈등을 애초에 막기 위해 ‘이주민을 받기 싫으면 돈으로 해결하라’는 공식적인 우회 경로다.​
내년부터 EU 회원국들은 연간 2만 1000명에 달하는 난민과 이주민 가운데 일부를 국가 별로 나눠서 수용해야 한다. 자국에 배정된 이주민을 받기 싫다면 1인당 2만 유로(약 3400만 원)를 분담금으로 내면 된다. 주요 매체들은 이를 사실상 ‘이민 거부세’라고 평가했다. 이렇게 모이는 자금은 연간 약 4억 2000만 유로(약 7200억 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 돈은 난민 수용에 부담이 큰 최전선 국가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공적기금으로 쓰인다. 이주민을 받은 국가가 곧바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EU 집행위원회가 자금을 관리하다 필요에 따라 투입하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난민 수용과 관리에 필요한 인프라, 생계 지원, 의료·교육 서비스 등에 활용될 예정이라고 주요 매체들은 전했다.​



프랑스 북부 덩케르크 인근 룬플라주에 위치한 이주민 임시캠프에서 이주민들이 빨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5년 시리아 난민 사태 당시 유럽에는 불법 이주민 약 130만 명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다. 그 때만 해도 유럽에는 이주민을 향한 동정심이 우세했다. 하지만 10년 동안 팬데믹으로 인한 경기 침체와 테러 위협, 치솟는 물가가 맞물리며 이주민에 대한 시선은 보호 대상에서 ‘비용 유발자’ 혹은 ‘잠재적 범죄자’로 바뀌었다.
라스무스 스토클룬드 덴마크 이민부 장관은 이날 회의를 마치고 “불법 체류자 4명 중 3명이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유럽에 눌러앉는 게 현실”이라며 “이번 규정은 이들에게 ‘유럽에 머물 권리가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신호탄”이라고 했다.
EU 통계기구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에만 약 51만 명이 망명을 신청했다. 이 중에 추방 명령을 집행한 비율은 20~30% 수준에 그쳤다. 작년 상반기 동안 이주민 최소 35만명 이상이 새로 유럽에 유입됐다는 의미다.
그 결과 유럽이 2차 세계 대전 이후 반 세기 넘게 동안 지켜온 인권과 망명권이라는 가치는 안보와 비용 효율성이라는 잣대에 밀려났다.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처럼 ‘이민자에게 관용을 베풀자’고 주도했던 서유럽 국가들조차 반이민주의의 파상 공세에 휘청이고 있다. 독일에서는 반이민을 기치로 내건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지방 선거에서 1위를 차지했다. 프랑스 역시 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연합(RN)이 사실상 제1야당으로 정부를 쥐락펴락하는 중이다.



지난달 29일 독일 서부 기센에서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전당대회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현수막과 깃발을 들고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합의안 역시 발효까지 유럽의회 최종 승인이 남았다. 그러나 지난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우파 연합이 과반을 차지했기 때문에 통과는 시간문제라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브루노 리테이유 프랑스 내무장관은 이날 회의 전 언론에 “유럽인을 보호하지 못하면 포퓰리즘이 우리를 휩쓸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근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마저 유럽 동맹국들을 향해 “국경 통제가 너무 느슨하다”, “약해 빠졌다”며 비난을 쏟아냈다. 그는 “미국은 멕시코와 캐나다 국경을 틀어막는데, 유럽은 테러리스트들에게 문을 열어주고 있다”는 화법으로 유럽 지도자들을 자극했다.
유로뉴스는 “새 합의안은 트럼프식 고립주의와 자국 우선주의가 유럽 정책 결정권자들에게도 실질적인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며 “불법 이민자 관련 수치를 개선하기 위한 EU의 고육지책이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할 인권 침해와 법적 분쟁은 유럽이 치러야 할 또 다른 비용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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