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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감독의 2012년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는 캐나다에서 종교학을 가르치는 인도인 교수, 파이의 기이한 생존담으로 시작된다.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는 가정에서 자란 그는 힌두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함께 믿으며 삶과 신앙에 남다른 호기심을 키운 소년이었다. 어느 날, 경제적 사정으로 가족은 동물원 사업을 정리하고 동물들과 함께 캐나다로 향한다. 그러나 항해 도중 폭풍우가 배를 집어삼키면서 가족은 모두 바닷속으로 사라지고, 파이만이 홀로 살아남는다. 그와 함께 구명보트에 오른 것은 뜻밖에도 다리 다친 얼룩말, 오랑우탄 그리고 하이에나였다.절반이 흰 천막으로 덮인 구명보트는 태평양 한가운데서 간신히 생 cofix 기준금리 존을 지탱할 수 있는 좁고 위태로운 공간이었다. 곧바로 위기가 닥친다. 굶주린 하이에나가 얼룩말을 물어뜯고, 이어 오랑우탄을 쓰러뜨리며 마침내 파이까지 위협한다. 그 순간 천막 아래 숨어 있던 벵골호랑이가 번개처럼 튀어나와 단숨에 하이에나를 제압한다. 그렇게 망망대해에서 200여 일간 이어질 파이와 호랑이의 기묘한 표류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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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이야기와 믿음의 문제영화는 후반부에서 표류 끝에 구조된 파이의 고백으로 관객을 혼란으로 몰아넣는다. 사고를 조사하던 선박 회사 직원이 동화 같은 생존담을 믿지 않자, 파이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애초에 구명보트에 오른 것은 동물이 아니라 다친 파산면책신청 선원, 어머니 그리고 난폭한 요리사였다는 것이다. 요리사가 선원과 어머니를 차례로 살해했고, 결국 자신은 분노 끝에 그를 죽였다고 고백한다. 조사관은 동물이 등장하지 않는 두 번째 이야기를 더 사실적인 진술로 받아들인다. 여기에서 얼룩말, 오랑우탄, 하이에나는 각각 선원, 어머니, 요리사로 치환된다. 그러나 감독은 어느 쪽 이야기가 진실인지 끝내밝히지 않 여성직업군인 는다. 대신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더 신뢰하는가?” 이어서 신의 존재 역시 믿음의 문제라고 설파한다. 같은 결말로 수렴되는 상반된 이야기를 병치하며, 파이의 서사는 단순한 생존담을 넘어 믿음의 본질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그렇다면 호랑이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파이의 내면 깊숙이 웅크린 본능, 억눌린 자아의 형상일지 모른다. 파이가 무직자연체 호랑이를 길들이며 천막 아래 어둠으로 몰아넣는 과정은 곧 자기 안의 난폭성과 충동을 직시하고 억누르는 과정과 겹친다.




라이프 오브 파이. /20세기 스튜디오



극단적 환경에서 대면하는 이성과 본능파이와 호랑이, 곧 이성과 본능이 분리되어 서로를 응시하는 낯선 상황은 바다 한가운데라는 극단적 환경에서 비롯된다. 육지에 의지해 살아가는 인간에게 물 위는 낯설고 불안한 세계다. 그곳에서 표류하는 인간은 무력감과 두려움에 압도되며, 자아의 균열을 경험한다.역설적으로, 이 좌절의 조건에서도 끝내 생존을 모색하는 인간의 의지는 변화무쌍한 자연과 함께 숭고한 장면을 빚어낸다. 폭풍우로 요동치던 바다는 어느새 거울처럼 고요히 석양을 비추고, 고래의 도약은 거대한 백색 파동을 일으킨다. 날치 떼는 무수한 잔물결을 흩뿌리고, 해파리는 밤바다를 초록빛 은하수로 물들인다. 이처럼 끊임없이 변주되는 물 위에서 파이와 호랑이의 보트는 작은 점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끝내 지워지지 않고 자리를 지키며, 거대한 자연의 맥동에 포섭된다. 이 상황에서 보트 안의 이성과 본능은 더이상 대립하거나 배제하지 않는다. 그것은 대자연의 심연에서 하나로 포개지며, 종교적 깨달음 혹은 도가적 무위자연의 경지를 환기한다. 날카롭게 맞서던 파이와 호랑이는 마침내 자연과 사투에 지쳐 서로에게 몸을 기댄다. 이 장면은 인간이 자기 내면의 타자와 균형을 이루는 순간으로 귀결된다.마코코 수상 학교의 성공 서사건축 역시 대체로 단단한 지반 위에 세워진다. 그렇기에 물 위에 떠 있는 건축은 언제나 대중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한다. 더구나 그것이 기후변화나 빈민 어린이 문제와 맞닿을 때 윤리성과 인도주의의 상징으로 급부상한다. 세계는 미디어가 전하는 서사에 열광하지만, 그 믿음은 영화의 두 이야기처럼 결국 진실이 아닌 선택의 문제로 귀결된다.마코코 학교는 2013년 나이지리아 라고스의 수상 공동체 마코코에 세워졌다. 약 30만 명이 모여 사는 이곳은 아프리카 연안의 대표적 빈민 주거지로, 말뚝 위 판잣집이 물 위에 위태롭게 걸쳐 있다. 건축가 쿤레 아데예미는 공간 부족에 시달리던 초등학교를 위해, 홍수에 취약한 지반 대신 물 위에 학교를 띄우는 독특한 발상을 현실로 옮겼다.그는 10m 정사각형 플랫폼에 폐플라스틱 통을 넣어 부력을 확보하고, 그 위에 현지 목재를 직조해 삼각형의 3층 건물을 세웠다. 1층은 작은 배가 드나드는 공동체 공간, 2층은 교실, 3층은 옥외 교실로 구성됐다. 열린 구조는 바람과 빛을 받아들이고, 태양광발전 패널, 빗물 수집 장치, 퇴비화 화장실은 자급자족하는 섬을 연상케 했다.국제 재단의 후원으로 세워진 마코코 학교는 완공과 동시에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빈민가 판잣집이 낮게 깔린 해안 위로 파란 지붕의 목재 피라미드가 홀로 솟아오른 모습은 뚜렷한 메시지를 전했다. 학교 둘레에 빽빽이 정박한 작은 배들의 풍경은 동화적이면서도 공동체의 희망을 상징했다. 이 건축물은 도시화와 기후 위기에 직면한 지역사회의 대안으로 찬사를 받았고, 뉴욕타임스(NYT)와 가디언의 지면을 장식했다. 2016년 아데예미는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청되어 학교의 산업화 모델을 선보이며, 은사자상을 받았다.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던 나이지리아 출신 건축가가 세계 무대로 도약하는 순간이었다.




강현석 SGHS 설계회사 소장 - 코넬대 건축대학원 석사,서울대 건축학과 출강, 전 헤르조그 앤드 드 뫼롱 스위스 바젤 사무소 건축가



혁신의 이면과 균형의 문제그러나 영예로운 수상 후 불과 일주일 만에, 마코코에서 비보가 전해졌다. 학교가 강풍에 휩쓸려 순식간에 무너졌고, 물 위에는 목재 잔해만 남았다. 다행히 구조적 이상이 사전에 감지되어 학생과 교사가 자리를 비운 덕분에 인명 피해는 없었다. 건축가는 붕괴의 원인으로 지역사회에 이관된 유지·보수 책임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즉흥적이고 빠른 시공 탓에 자재와 시공의 품질이 완벽하지 않았고, 따라서 적극적인 보수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또한, 마코코 학교가 사회·환경적 혁신을 위한 실험적인 프로토타입이었음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이를 입증하듯, 2018년에 벨기에 브뤼허와 중국 청두에서 구조적 보강과 조립식 모듈 시스템을 적용한 업그레이드 버전을 선보였다. 그렇게 마코코 학교의 여정은 마무리됐고, 그 해석은 대중의 몫으로 남겨졌다.그러나 저널리스트인 알린 게스텔은 마코코 학교가 홍보와 달리 거의 교실로 쓰이지 않았으며, 애초부터 건축가가 야망을 위해 무리하게 강행한 프로젝트였다고 비판했다. 그녀는 특히 ‘혁신을 위한 실험’이라는 명분을 문제 삼으며, 가난하고 소외된 공동체를 대상으로 한 시도와 실패가 과연 누구의 이익이 되는지를 날카롭게 물었다. 구명보트의 파이와 호랑이처럼, 혁신이 요구되는 극한의 환경 앞에서 건축가는 이성과 본능을 동시에 마주한다. 한쪽에는 기술자로서 사회적 책임이, 다른 쪽에는 창조의 열정과 명예를 향한 욕망이 자리한다. 영화는 결국, 대립도 배제도 아닌, 그사이의 긴장을 지탱하는 섬세한 균형에서 공동을 위한 길이 열릴 수 있음을 조용히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