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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철금속 업계의 거목’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사진)이 지난 6일 향년 84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반세기 넘게 고려아연에서 헌신하며 연(납) 생산을 통해 소재 국산화의 초석을 다졌고, 이를 기반으로 회사를 아연·연 생산량 세계 1위 기업의 반열에 올려놓은 탁월한 경영인이었다.

그는 1941년 황해도에서 태어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MBA를 취득했다. 유창한 외국어 실력과 원만한 대인관계를 바탕으로 일찌감치 글로벌 경영 감각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故) 최기호 초대 회장의 장남으로 1974년 고려아연 창립 멤버로 합류한 그는 당시 상환 불모지였던 국내 비철금속 산업에서 기술 자립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독자 기술 확보에 인생을 걸었다.
고려아연은 당시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에 따라 제련업을 맡았으나, 자금과 기술 모두 부족한 상태였다. 그는 세계은행 산하 국제금융공사(IFC)와 직접 협상에 나서 “7000만달러는 필요할 것”이라는 평가를 “5000만달러면 충분하다” 저금리 기조 고 설득해 사업 자금을 확보했다. 자금과 기술이 부족한 환경에서도 1978년 울산 온산에 국내 최초의 대형 비철제련소를 완공시켰다.
무(無)에서 유(有)를 일군 도전정신은 이후 ‘온산의 기적’으로 불렸다. 고려아연은 100년 역사의 해외 제련소를 추월하며 세계 시장에 이름을 올렸다. 1980년대에는 기술연구소를 세우고 아연·연·동 통합공정 취급수수료 을 구축했고, 1990년 기업공개(IPO)로 투명경영을 강화했다. 영풍정밀·서린상사·코리아니켈 등 계열사를 차례로 설립해 사업 기반을 넓혔다.
고인은 생전 “스타 플레이어 한 사람보다 탄탄한 조직력이 우선”이라며, 개인의 역량이 아닌 전 임직원이 합심해 만든 조직의 힘을 성공의 핵심 비결로 꼽았다. 그는 “고려아연은 큰 바위 몇 개를 쌓아 신용보증 올린 것이 아니라, 흙가루 하나하나를 정성 들여 다져놓은 모양”이라며 “어느 위치에 있는 사람이든 자기 업무를 잘해주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개인보다 조직’을 앞세운 그의 리더십은 고려아연이 반세기 가까이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고 글로벌 리더로 우뚝 서는 데 굳건한 반석이 됐다. 그의 리더십 아래 고려아연은 창립 이래 변동금리기준 단 한 차례의 노사분규 없이 102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회사는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구조조정이나 명예퇴직을 시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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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이 생전 제련소 현장을 둘러보고 있는 모습. <고려아연>



고인은 이웃과의 나눔을 잊지 않는 따뜻한 경영인이었다. ‘임직원 기본급 1% 기부’ 운동을 솔선수범하며 나눔 문화를 사내에 정착시켰고, 2012년에는 부인 유중근 여사와 함께 사회복지공동모금회 1억 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에서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했다.

그가 남긴 “100년 가는 회사가 위대한 회사”라는 유지는 아들인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에게로 이어지고 있다. 최윤범 회장은 2차전지 소재, 자원순환, 신재생에너지 등 3대 사업을 핵심 축으로 삼는 ‘트로이카 드라이브’ 신사업 전략을 통해 아버지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
고려아연은 올해 상반기에 연결기준 매출액 7조6582억원을 올리며 사상 최대 반기 실적을 기록했다. 또 최근 세계 1위 방산기업 록히드마틴에 전략광물 게르마늄을 공급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등 중국의 수출통제로 불안정해진 글로벌 소재 공급망을 안정화하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고인의 장례는 회사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0호실에 마련됐으며, 영결식은 오는 10일 오전 8시에 거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