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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분쟁지역과 소외지역을 누비며 난민과 이주민을 찍어온 다큐멘터리 사진가 성남훈. 타인의 고통 앞에 카메라를 들어 올릴 때마다 그는 자신이 찍는 사진의 역할을 떠올린다. 세상 사람들이 그의 사진을 통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목도하고 그들을 따뜻한 사랑으로 품어주길 바란다. 사진으로 세상에 화두를 던져온 성남훈을 만났다.
다큐멘터리 사진가 성남훈(62)에게는 ‘난민 전문 사진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1990년대 초반부터 보스니아를 비롯해 르완다, 코소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레바논 등 분쟁지역을 찾아다니며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난민들을 우체국 다문화 적금 앵글에 담았다.
난민 전문 사진가 성남훈
개인적인 영광이나 명성을 위해 그들을 찍은 것은 아니지만, 그의 20여 년 사진 기록은 전시회와 사진집 <유민의 땅(THE UNROOTED)> <불 4월6일방송 완한 직선> 등으로 묶여 세상에 나왔다. 세계 최대 규모의 보도사진 콘테스트 ‘월드프레스포토’에서 두 번이나 상을 받기도 했다.
“저에게 있어 사진을 찍는 것은 어쩔 수 없이 타인의 고통, 삶에 개입하는 일이에요. 그런데 사진이 제대로 역할을 못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코란도c루마니아 집시의 전속 사진가
성남훈은 비교적 늦은 나이에 사진을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미술을 하고 싶었지만, 시골에서 자란 탓에 변변한 기회를 얻지 못했고, 부모님의 기대에 맞춰 전주대학교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에서는 학과 공부보다는 연극반 활동에 주력했다.
“그때도 지금이랑 비슷하게 제일은행저축은행 생겨서 노(老)역 전문 배우를 했어요(하하). 정말 열정적으로 활동했는데, 그때 경험이 나중에 사진을 하는 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어요.”
졸업할 무렵 진로를 고민하다 우연히 사진의 매력을 발견했다. 본격적으로 사진을 공부하겠다고 결심하고, 낯선 프랑스로 떠나 사진 전문학교인 ‘이카르 포토(Icart Photo Ecole de Pa 한국장학재단 생활비만 대출 ris)’에 들어갔다. 부모님께는 패션사진으로 유명해져 큰돈을 벌겠다고 둘러댔다. 말도 잘 통하지 않고, 그보다 한참 어린 학생들과 공부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그렇지만 3년 만에 그는 프랑스의 전통 있는 예술전 ‘르 살롱’ 사진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수상 작품은 파리 외곽에 살던 루마니아 집시들을 찍은 것이었다.
중국 쓰촨성 간쯔현 아추가르 불교학교에서 배움에 정진하는 비구니를 찍은 작품 ‘연화지정’.
1990년대 초 프랑스에는 동유럽 공산국가들이 무너지면서 유입된 집시들이 많았다. 집시는 춤과 노래를 사랑하는 자유로운 영혼이기도 했지만, 구걸로 삶을 연명해야 하는 비참한 상황에 놓여 있기도 했다.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면 경계심이 강한 그들이 동양에서 온 남자의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목에 집시촌이 있었어요. 어느 안개 낀 새벽, 불을 피워둔 집시촌을 보고 충동적으로 다가갔어요. 다른 사람은 없고, 어린아이 한 명만 소리도 내지 않고 저를 빤히 쳐다보길래 저도 모르게 셔터를 눌렀어요. 그러자 어디선가 아이들이 슬금슬금 다가와 호기심을 보였어요. 자연스럽게 친해져서 계속 사진을 찍고, 인화해서 선물하기도 하면서 1년을 왕래했더니 집시들의 전속 사진가가 되어 있었죠.”
그가 집시들의 전속 사진가라면 집시들은 그의 전속 모델이었다. 성남훈은 학교에서 배운 것을 집시촌에서 마음껏 펼쳤다. 그들과 가까워질수록 불안한 미래, 파리의 이방인이라는 동질감이 짙어졌다. 그러는 사이 그의 사진 세계는 점차 형체를 갖춰갔다.
“저의 시각이 완전하지 않았지만, 누군가에게 내 생각을 옮길 수 있는 사진 구조가 되어간다고 느꼈어요. 그 힘으로 전쟁, 정치·경제적 문제 등으로 자신의 터전을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관해 작업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사진 학교를 졸업한 그는 이듬해 프랑스의 유명 사진 에이전시 ‘라포(Rapho)’에 동양인 최초로 입단했다.
사진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10년간 세계 분쟁지역을 찾아가 유민을 기록하겠다는 위험하고도 장대한 구상이 첫발을 내디뎠다. 첫 행선지는 보스니아였다. 보스니아 전쟁이 끝난 후 재건이 필요한 시점, 그는 라포와 NGO 단체의 도움을 받아 난민촌으로 들어갔다.
“전쟁 중 벌어지는 치열한 전투나 참혹한 죽음 같은 것들보다는, 파괴된 터전에서도 일상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담고 싶었어요.”
그의 작업물은 난민촌을 보여주는 사실적인 사진이었지만, 대단히 서정적이라는 평을 받았다. 깊은 서정성은 사진 애호가들에게 각광받는 지점이지만, 전쟁의 극한 상황을 표현하기에는 약한 구조이기도 했다.
“폐허 속에서 살아내려고 하는 모습, 거기 있는 희망적인 가치를 담고 싶었어요.”
아프리카 르완다 내전 당시 난민을 찍은 사진.
이를테면 성남훈은 남겨진 아이들에게도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그의 사진이 그런 관심을 불러오기를 바랐다. 10년 넘게 50여 개국을 다니며 전쟁 유민 촬영 작업을 이어간 이유다. 20세기 말 거의 모든 전쟁터에 성남훈이 있었다.
2006년 전쟁 유민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즈음 새로운 현상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도시화가 세계적인 추세였고, 때로는 자원전쟁이 일어나면서 이제는 경제적인 이유로 떠도는 사람이 많아졌다. 또 아프리카에서는 사막화 등 기후변화로 새로운 터를 찾아 이동하고, 그러다가 가족이 흩어지는 일이 빈번했다. 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기록하는 작업은 그 때문에 조금 더 지속됐다.
20여 년을 남의 나라로, 그것도 파괴된 땅으로 찾아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을까?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먹고 자고 씻는 모든 환경이 열악했다. 그럼에도 계속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위험한 순간도 있었지만 운이 좋았어요. 사고는 순식간에 나니까요. 그리고 부모님께 감사하게도 저는 어딜 가나 잘 먹고, 또 누우면 금방 잘 잤어요. 허허.”
불완전함을 기록하는 의미
지난해 발간한 사진집 <서걱이는 바람의 말>은 성남훈이 국내로 시선을 돌린 작품이다. 2019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하자 성남훈은 그동안 미뤄두었던 우리 땅에 깃든 슬픔에 파고들었다. 그 여정의 시작은 제주였다. 제주 4·3사건은 1947~1954년 제주에서 벌어진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3만 명에 이르는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된 비극이다.
성남훈은 책의 서문에서 밝힌 대로 학살터와 희생자가 수장된 바다, 생존자, 굿과 신당 등을 찾아다녔다. 대형 폴라로이드 필름으로 촬영한 뒤 의도적으로 현장의 나무와 돌에 긁어 불완전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생존자의 사진을 찍고 그 위에 그들의 이야기를 포개었다.
한 장의 사진으로 온전히 재현할 수 없는 역사의 불완전성, 희미해질수록 붙들어두어야 하는 기억의 소명에 대한 사진의 질문이기도 하다.
(<서걱이는 바람의 말> 중)
사진이 과거를 찍을 수는 없지만, 현재 위에 중첩된 역사적 사건을 불완전한 이미지로 포착하려고 했다. 기록에 관한 집념은 후지필름과 협업한 ‘천 개의 카메라’ 프로젝트에도 담겨 있다. 이 프로젝트는 사진 전문가와 일반인이 참가해 함께 서울과 한국의 유네스코 유산을 기록하는 것이다.
성남훈이 엮어낸 사진집들.
“사진의 기록성은 여전히 중요해요.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기 때문에 더욱 정교한 기록이 필요하죠. ‘오늘’을 기록해 ‘내일’에 전해주려는 취지입니다.”
길고 긴 사진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는 지칠 줄을 모른다. 문득 사진가가 아닌 성남훈은 어떤 사람인지 물었다. 수줍은 듯 사람 좋은 웃음을 띠며 말한다.
“별거 없어요. 그냥 사진 일만 해요. 사무실에 나와서 프로젝트, 전시회 준비하고, 시간이 남으면 개인 작업 정리하고요. 사람들이랑 가끔 술 한잔하는 것 말고는 재미없는 사람이에요.”
글 길다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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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분쟁지역과 소외지역을 누비며 난민과 이주민을 찍어온 다큐멘터리 사진가 성남훈. 타인의 고통 앞에 카메라를 들어 올릴 때마다 그는 자신이 찍는 사진의 역할을 떠올린다. 세상 사람들이 그의 사진을 통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목도하고 그들을 따뜻한 사랑으로 품어주길 바란다. 사진으로 세상에 화두를 던져온 성남훈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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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집시들의 전속 사진가라면 집시들은 그의 전속 모델이었다. 성남훈은 학교에서 배운 것을 집시촌에서 마음껏 펼쳤다. 그들과 가까워질수록 불안한 미래, 파리의 이방인이라는 동질감이 짙어졌다. 그러는 사이 그의 사진 세계는 점차 형체를 갖춰갔다.
“저의 시각이 완전하지 않았지만, 누군가에게 내 생각을 옮길 수 있는 사진 구조가 되어간다고 느꼈어요. 그 힘으로 전쟁, 정치·경제적 문제 등으로 자신의 터전을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관해 작업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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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을 남의 나라로, 그것도 파괴된 땅으로 찾아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을까?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먹고 자고 씻는 모든 환경이 열악했다. 그럼에도 계속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위험한 순간도 있었지만 운이 좋았어요. 사고는 순식간에 나니까요. 그리고 부모님께 감사하게도 저는 어딜 가나 잘 먹고, 또 누우면 금방 잘 잤어요.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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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발간한 사진집 <서걱이는 바람의 말>은 성남훈이 국내로 시선을 돌린 작품이다. 2019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하자 성남훈은 그동안 미뤄두었던 우리 땅에 깃든 슬픔에 파고들었다. 그 여정의 시작은 제주였다. 제주 4·3사건은 1947~1954년 제주에서 벌어진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3만 명에 이르는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된 비극이다.
성남훈은 책의 서문에서 밝힌 대로 학살터와 희생자가 수장된 바다, 생존자, 굿과 신당 등을 찾아다녔다. 대형 폴라로이드 필름으로 촬영한 뒤 의도적으로 현장의 나무와 돌에 긁어 불완전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생존자의 사진을 찍고 그 위에 그들의 이야기를 포개었다.
한 장의 사진으로 온전히 재현할 수 없는 역사의 불완전성, 희미해질수록 붙들어두어야 하는 기억의 소명에 대한 사진의 질문이기도 하다.
(<서걱이는 바람의 말> 중)
사진이 과거를 찍을 수는 없지만, 현재 위에 중첩된 역사적 사건을 불완전한 이미지로 포착하려고 했다. 기록에 관한 집념은 후지필름과 협업한 ‘천 개의 카메라’ 프로젝트에도 담겨 있다. 이 프로젝트는 사진 전문가와 일반인이 참가해 함께 서울과 한국의 유네스코 유산을 기록하는 것이다.
성남훈이 엮어낸 사진집들.
“사진의 기록성은 여전히 중요해요.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기 때문에 더욱 정교한 기록이 필요하죠. ‘오늘’을 기록해 ‘내일’에 전해주려는 취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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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길다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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