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살기를 보여주는 일본 애니메이션인 드래곤 볼(왼쪽)과 귀멸의 칼날 [사진출처=스틸컷, 포스터/ 편집=최기성 매경 디지털뉴스룸 기자]



요즘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가 인기라고 합니다. ‘극장판 귀멸의 칼날 : 무한성편’은 올해 한국 관객이 가장 많이 찾은 영화가 됐습니다.

애니메이션 영화가 국내 박스오피스 기록에서 전체 1위에 등극한 것도 사상 처음이라네요.
넷플릭스와 같은 온라인 동영상서비스(OTT) 등장 이후 망하기 직전까지 간 게임릴사이트 영화관에 생명수 같은 존재가 됐습니다.
어떤 애니메이션인지 궁금해 정보를 찾아보다 예전에 봤던 일본 애니메이션들과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필살기’입니다. 드래곤 볼의 ‘에네르기파’, 피구왕 통키의 ‘불꽃 슛’, 축구왕 슛돌이의 ‘독수리 슛’이 대표적이죠.
솔직히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귀멸의 칼날에서도 바다이야기게임방법 화뢰신, 젠이츠, 벽력일섬 등 필살기가 쏟아진다고 하네요.


일본 만화는 왜 필살기를 좋아할까





귀멸의 칼날 포스터 [사진출처=애니맥스브로드캐스팅코리아]
골드몽릴게임


필살기는 일본인들의 성향을 잘 보여준다고 합니다.

문화심리학 책 ‘선을 넘는 한국인, 선을 긋는 일본인’(한민 지음 / 부키)에 따르면 일본인들이 추구하는 강함을 극대화한 실체가 필살기입니다. (미국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의 명저 ‘국화와 칼’에서는 강함을 사이다릴게임 칼로 묘사했습니다.)
일본인들은 ‘모든 것(사람)은 정해진 곳에서 정해진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설명합니다.
대를 이어 도자기를 만들고 우동 집을 운영하는 등 수백년간 전통을 이어가는 장인 정신이 숭상받는 이유일 겁니다.
장인 정신에는 사회적으로 정해진 자기 자리에서 자신에게 집중되는 다른 오션릴게임 사람들의 기대에 항상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단, 정해진 곳에서 정해진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불편과 불안을 느낀다고 하네요.



드래곤 볼 슈퍼 [사진출처=점프코닉]



경쟁이 대표적입니다. ‘국화와 칼’은 미국인과 일본인의 차이를 ‘경쟁’으로 설명했습니다.

경쟁은 미국인들을 자극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반면 일본인들에게 경쟁은 패배에 대한 불안감을 높여 작업 능률을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합니다.
저자는 일본인들이 승패가 순간적으로 갈리는 경쟁에 취약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분석합니다.
경쟁에서 질 경우 분발보다는 수치심을 느끼고 결국에는 자신감을 잃고 우울증에 빠진다고 하네요.
필살기는 불안감에 빠지지 않고 주어진 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게, 자신감을 잃지 않고 수치심도 느끼지 않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필살기가 나오는 만화·영화·게임이 일본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도 경쟁에서 질까 두려워하는 일본인들에게 위로와 대리만족을 선사해줬기 때문은 아닐까요.
주저리주저리 필살기에 대해 길게 설명했습니다. ‘세상만車’ 이번호의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혼다, 일본 장인 정신 앞세워 성장





혼다 CR-V와 테슬라 모델Y [사진출처=혼다, 테슬라/ 편집=최기성 매경 디지털뉴스룸 기자]



일본 장인 정신을 대표하는 자동차 브랜드는 혼다입니다. ‘모노즈쿠리’로 대표되는 일본 제조업 전통과 장인 정신의 핵심인 ‘가이센’(改善, KAIZEN)을 중요하게 여겨는 브랜드죠.

모노즈쿠리와 가이센은 혼다를 ‘그냥 혼다’가 아닌 ‘기술의 혼다’로 만들었습니다.
혼다 창업자인 혼다 소이치로는 경영보다 기술을 먼저 챙겼습니다. 이윤을 극대화하기 보다는 기술 개발에 이윤을 투자해 기술 경쟁력을 강화했죠.
혼다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오히려 돈을 더 많이 쓰는 브랜드로도 유명합니다. 한눈에 차이점을 알 수 있는 겉모습보다는 보이지 않는 속을 알차게 개선하는 데 공들이죠.
완전변경(풀체인지) 모델을 내놓을 때도 파격과 혁신보다는 검증된 기존 모델의 디자인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그 결과 혼다 차량은 내구성이 좋아 품질로 속 썩이는 일이 적다는 평가를 받게 됐습니다. 10년 타도 1년 탄 것 같다고 하죠.
국내에서도 고장없이 너무 오래 타다보니 지겨움이 짜증으로 이어지지만 바꿀 핑계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게다가 서비스 품질까지 우수합니다.
이윤보다 기술을 우선시하는 장인 정신과 가이센 전략이 혼다를 세계 최대 자동차 브랜드 격전장인 미국은 물론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도 성공한 브랜드로 자리잡게 만든 비결인 셈입니다.



혼다 CR-V 하이브리드 [사진촬영=최기성 매경 디지털뉴스룸 기자]



일본차 브랜드가 주도하고 있는 하이브리드카(HEV) 분야에서도 토요타보다 후발주자인 혼다는 장점인 기술력으로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혼다는 토요타와 같으면서도 다른 감성의 하이브리드 기술을 개발했죠. 토요타 하이브리드가 가솔린차 성향을 지녔다면 혼다 하이브리드는 전기차 성향을 지녔습니다. 엔진이 모터를 거들 뿐이죠.
하이브리드카 분야에서도 ‘기술의 혼다’ 명성은 계속됐습니다. 주유소도 카센터도 싫어한다는 말이 나올 수준입니다.
심지어 “혼다 차량을 가장 싫어하는 곳은 혼다 서비스센터”라는 말까지 있습니다.
고장이 ‘때 맞춰’ 나야 서비스 수익도 늘고, 고장은 바꿀 핑계로 이어져 신차 대차 수요도 늘어나 혼다에 이익인데 돈 벌 기회를 잃게 만들어서죠.
혼다는 수입차 브랜드들의 ‘테스트 베드’ 역할을 하는 한국에서도 기술을 앞세워 인기를 끌었습니다. 수입차 대중화도 사실 혼다 덕분입니다.
대표모델은 혼다 CR-V입니다. 1995년 출시 150여개국에서 30년간 글로벌 누적 판매 1500만대 이상 판매된 글로벌 베스트셀러입니다.
CR-V는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았습니다. 2004년 국내 출시 이후 2005년부터 2008년까지 4년 연속 수입 SUV ‘톱3’를 기록하고 2007년에는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인기 비결은 뛰어난 내구성, 합리적 가격, 넓은 공간과 다목적성 등에 있습니다. 오프로드는 거의 가지 않고 포장도로를 달리는 시대 흐름에 가장 적합하게 진화한 ‘승용 감각의 SUV’라는 점도 한몫했죠.


장인 정신에 ‘혁신 필살기’ 더해야





가이센을 추구한 혼다 CR-V [사진출처=혼다/편집=최기성 매경 디지털뉴스룸 기자]



권불십년. 수입차 대세가 토요타 캠리, 폭스바겐 티구안을 거쳐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등 프리미엄 독일 브랜드 차종으로 넘어가면서 CR-V는 베스트셀링카 자리에서 내려왔습니다.

절치부심. 혼다는 브랜드 최초 하이브리드(HEV) 모델인 CR-V 하이브리드를 앞세워 판매 회복에 나섰습니다.
지난 2023년에는 6년 만에 완전 변경된 올뉴 CR-V를 선보였습니다.
올뉴 CR-V는 어코드와 함께 혼다를 먹여 살렸습니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정체)와 벤츠 EQE 화재로 전기차 공포증이 확산되면서 하이브리드카가 다시 주목받았던 지난해에는 맹활약했습니다.
한국수입차협회(KAIDA)에 따르면 지난해 혼다코리아 판매대수는 2507대로 전년보다 81% 증가했습니다. 26개 브랜드 중 가장 높은 판매 증가율입니다.
혼다 판매성장세를 이끈 차종은 5000만원대 하이브리드카였죠. 현대차 그랜저와 경쟁하는 어코드 하이브리드는 지난해 876대 판매됐습니다. 전년보다 판매량이 358.6% 폭증했죠.
기아 쏘렌토, 현대차 싼타페 등과 경쟁하는 CR-V 하이브리드는 전년보다 132% 증가한 819대가 판매됐습니다.



혼다 어코드 하이브리드 [사진촬영=최기성 매경 디지털뉴스룸 기자]



올해에는 다시 판매가 감소세로 돌아섰습니다. 올해 1~11월 판매대수는 전년동기의 2145대보다 19.5% 줄어든 1726대로 집계됐습니다. 수입차 순위는 16위에 그쳤죠.

어코드와 CR-V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을 새로운 하이브리드카와 전기차가 없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겁니다.
여기에 ‘가이센’을 넘어 ‘혁신’을 보여줄 기술을 선보이지 않는 것도 혼다의 성장 동력을 멈추게 했다고 봅니다.
가이센을 통해 상품성을 향상한 CR-V 부분변경 모델을 최근 내놨지만 전체 판매감소세를 역전하기에는 2% 부족해보입니다.
장인 정신과 가이센 효과가 주춤하고 있는 현재, 혼다도 필살기를 보여줄 때가 됐습니다.
혼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신차 필살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순수 전기차 라인업으로 글로벌 전략 모델인 ‘제로(0) 시리즈’가 대표적입니다.
내년에 출시 예정인 제로 시리즈는 개선을 넘어 혁신을 추구한 ‘기술 필살기’를 갖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실, 혼다에만 필살기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혁신의 아이콘’ 테슬라 등장 이후 요즘 소비자들이 더 까다로워졌기 때문이죠.
기존 브랜드 충성 고객을 빼앗기지 않고 새로운 수요도 창출하려면 차별화한 필살기가 필요합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혼다는 물론 현대차, 기아, 토요타, 테슬라, BMW, 벤츠 등이 모두 ‘필살기의 향연’을 펼치기를 바랍니다. 더 ‘살 맛’ 나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