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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수사가 너무 정치적이어서 제가 (검찰에) 사표를 내고 나왔다. 이건 진짜 팩트다. 너무 정치적이어서 제가 당시 검찰 지휘부에 대한 불만을 표명하고 사표를 낸 것이다.” 2023년 2월21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한 이복현 당시 금융감독원장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김건희의 연루 여부를 묻는 야당 의원에게 이렇게 답했다. 문재인 정권에서 임명된 검찰 지휘부가 수사팀에 김건희를 기소하도록 ‘압박’한 것에 환멸을 느껴 사표를 냈다는 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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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은 사표 내기 직전 서울북부지검 형사부장이었다. 이 사건 수사는 서울중앙지검에서 하고 있었다. 수사팀 내부 사정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위치에 있던 그가 이 사건 때문에 사표까지 냈다는 주장은 선뜻 믿기 어려웠다. 의문은 곧 풀렸다. 그의 진짜 사직 이유로 추정되는 인사가 발표됐다. 그는 윤석열 당선 한달 뒤인 2022년 4월 사표를 냈는데, 두달 뒤PC파칭코
인 6월 금감원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첫 검찰 출신이자 최연소 금감원장이었다. 금융업계는 그를 ‘실세 금감원장’이라 불렀다.
김건희에 대한 ‘정치적 수사’에 환멸을 느꼈다던 이복현은 취임 7개월 뒤인 2023년 1월 ‘더 정치적’인 일을 벌였다. ‘장하성 동생 펀드’라 불린 디스커버리 펀드에 대해 난데없이 추가 조사를 지시한 것이다. 문재투자왕닷컴
인 정권 때 금감원은 장하원 디스커버리자산운용 대표의 사기 혐의에 대해 두차례나 조사한 뒤 무혐의 처리한 바 있다. 검찰이 장하원을 사기 혐의로 기소한 사건도 이미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나중에 2, 3심도 모두 무죄였다). 그런데도 추가 조사를 지시한 건 이 사건을 문재인 정권의 ‘권력형 금융 사기’로 몰아가려는 의도로 의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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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무혐의 결정을 내렸던 금감원 직원들은 ‘부실 검사’ 혐의로 감사원의 조사를 받았다. ‘찐윤’ 유병호 사무총장(현 감사위원)이 이끄는 감사원은 직원들을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협박했다. 이 직원들은 이복현이 단행한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았다. 금감원 직원들은 동요했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전 정권 때 내린 모든 결정을 뒤집으라는 ‘압박’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복현대선관련주
은 2023년 8월 금감원 임원 회의에서 “최근 일련의 업무는 원장이 책임지고 하는 것이다. 업무에 매진해달라”며 군기를 잡았다. 디스커버리 펀드 추가 조사에서 장하원의 ‘별건’ 혐의를 잡아내 검찰에 통보한 직후였다. 직원들은 이복현을 ‘금융검찰청장’이라고 비아냥거렸다.



2023년 6월29일 유병호 당시 감사원 사무총장이 2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허고을 쳐다보고 있다. 왼쪽은 최재해 감사원장.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이복현, 윤석열 파면 뒤 “펀드 부실 단정 어렵다”
‘윤석열의 충신’으로 영원히 남을 것 같았던 이복현은 2025년 4월4일 윤석열이 헌법재판소 전원일치 결정에 따라 파면되자 태세를 전환했다. 금감원은 헌재 선고 19일 만인 4월23일 갑자기 디스커버리 펀드 추가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는 “펀드가 부실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장하원이 펀드의 부실을 숨기고 판매한 혐의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2년여 동안 질질 끌었던 추가 조사 결과가 앞서 문재인 정권 때 내린 결론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원장으로서 책임을 지겠다’던 이복현은 지난 6월5일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퇴임했다.
서울남부지검은 이복현이 건네준 ‘별건’ 혐의를 토대로 2023년 7월 장하원에 대한 ‘보복’ 수사에 나섰다. 앞서 ‘본건’ 1심 재판에서 완전 무죄 판결로 체면을 구긴 검찰은 바싹 독이 오른 상태였다. 검찰은 장하원과 함께 일하던 젊은 직원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이들을 참고인으로 소환한 뒤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피의자가 될 수 있다’는 식으로 압박했다. 앞길이 창창한 직원들에게 검찰 기소는 더 이상 금융업계에 발붙일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사실은 나중에 재판이 시작되고 나서야 드러났다. ‘별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한 직원은 다섯차례(5일) 검찰에 불려 가 조사를 받았는데, 재판에 제출된 조서는 3일치밖에 없었다. 이를 수상히 여긴 변호인이 그 직원에게 검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따져 묻자, 그는 ‘처음엔 잘 모른다고 했다. 내가 담당했던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도 검사가 자꾸 물어봐서 그냥 그렇게(조서에 적힌 대로) 대답한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 직원은 처음 이틀 동안은 자정을 넘길 때까지 조사를 받다가 4, 5일째는 2~3시간밖에 조사를 받지 않았다.



2024년 9월16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심우정 검찰총장 취임식에 신응석 서울남부지검장(가운데)이 참석해 있다. 한겨레 자료


검찰 “수사에 협조하면 참고인, 안 하면 피의자”
이런 사실은 검찰의 회유와 압박이 있었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었다. 하지만 ‘별건’ 사건 1심 재판부는 여기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5부(재판장 양환승)는 2025년 4월29일 장하원에게 징역 2년의 집행유예(3년)를 선고했다. 검찰의 공소사실은 앞서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본건’과 법리적 쟁점이 같았지만, 재판부는 전혀 다른 사건으로 취급했다. 판결문은 마치 검찰의 공소장을 베낀 것 같았다. 재판장은 법정에서 장하원을 ‘장하성 피고인’이라 부르기도 했다. 검찰은 재판 내내 ‘장하성 배후설’을 재판부에 주입하려고 애를 썼다.
검찰이 기소 대상으로 삼은 펀드는 ‘본건’에 등장하는 펀드와 설정 시점과 만기만 다를 뿐 기초자산과 투자 전략은 같은 시리즈 펀드였다. 기소 대상인 21개 펀드 중 2018년 8월에 설정한 12개 펀드(25호~36호)는 만기에 투자 원금을 회수하고 목표 수익률까지 달성한 우량 펀드였다. 문제는 2020년 코로나19 사태 이후 만기가 돌아오는 나머지 9개 펀드(37호~45호)였다. 이 9개 펀드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미국의 경제활동이 셧다운되는 바람에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검찰은 이 사실을 근거로 장하원이 ‘25호 펀드 설정 때부터 기초자산의 부실 가능성을 알고 있었으면서 투자자에게 알리지 않았다’며 ‘사기적 부정거래’라고 주장했다. 이 9개 펀드에 투자한 이들은 장하원의 형 장하성 전 주중 대사를 비롯한 친인척과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 지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검찰의 주장대로라면, 장하원이 9개 펀드의 부실 가능성을 잘 알면서도 친인척과 지인들에게 속여서 팔았다는 황당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변호인은 재판에서 이런 모순점을 지적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도 스스로 찜찜했는지 집행유예 선고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펀드 2종(9개) 투자자들에 대한 원리금 상환이 상당 부분 이뤄지지 않았으나, 그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은 주로 피고인의 가족 또는 지인이고, 일반 투자자들이 입은 피해는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법원 “장하원, 투자자 피해 회복 위해 노력”
재판부는 또 “환매 중단 이후 피고인은 투자자들의 원리금 상환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보인다”며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고 했다. 실제로 장하원은 2019년 4월 환매 중단 사태 이후 투자자들의 피해 회복에 전력을 다했다. 신규 투자 업무를 중단하고 직원들을 미국에 파견해 현지 대출업체에 투자 원금 회수를 독려하도록 했다. 그 결과 일반 투자자들의 투자 원금은 대부분 회복됐다.
검찰의 보복 수사는 오히려 투자자 피해 회복에 방해가 됐다. 장하원과 임직원들의 휴대전화와 개인 컴퓨터 등 업무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검찰에 압수돼 후속 작업을 할 수 없었다. 장하원은 출국이 금지됐다. 그가 환매 중단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자문 변호사와 상의하는 것도 검찰의 제지를 받았다. 검사는 이를 증거인멸 행위로 의심했다.
장하원을 괴롭힌 건 검찰뿐만이 아니었다. 감사원도 금감원 직원들에 대한 감사를 핑계로 장하원과 직원들을 조사했다. 감사원은 민간인을 조사할 권한이 없지만,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검찰로 사건을 넘기겠다’고 협박하는 바람에 조사를 거부하긴 사실상 불가능했다.
환매 중단 사고가 난 펀드는 장하원이 운영하는 전체 1조원 규모의 자산 가운데 5분의 1 수준인 2천억원이 투자된 것에 불과했다. 장하원은 나머지 8천억원의 자산을 잘 지키면 곧바로 회복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검찰 수사와 감사원, 금감원의 집요한 조사는 그의 손발을 묶어버렸다. 환매 중단 사태는 그의 나머지 자산에도 영향을 미쳤다. 장하원은 더 이상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큰 타격을 받았다.



지난 8월18일 건진법사 전성배씨가 김건희 특검 사무실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장하원 ‘3차 수사’ 승인 남부지검장, 건진 ‘돈다발 띠지 분실’ 덮어
‘별건’ 1심 재판부가 장하원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뒤 서울남부지검 수뇌부(신응석 전 검사장, 이희동 차장)는 장하원의 ‘또 다른 별건’ 수사를 승인했다. 그에 대한 세번째 수사다. 이 무렵 남부지검 수뇌부는 ‘건진법사 게이트’를 수사하던 수사팀이 지난해 12월 압수한 현금 1억6500만원 돈다발을 묶은 띠지를 전부 분실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압수된 현금에는 한국은행 ‘관봉권’ 5천만원도 포함돼 있었다. 이 돈의 출처가 대통령실이나 검찰의 특수활동비일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였다. ‘친윤’ 검사인 신응석과 이희동은 수사팀에 대한 감찰도 없이 그냥 덮었다. 장하성 형제에게 시퍼렇게 날이 섰던 검찰의 칼은 윤석열·김건희 부부와 그 일당에겐 한없이 무뎠다. 다음 회에 계속 됩니다.

‘윤석열 부부의 친위대’를 자처한 검찰의 문제적 수사를 톺아보는 이춘재의 ‘검찰 수사의 재구성’의더 많은 이야기를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코너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네이버, 다음 등 포털뉴스 페이지에서는 하이퍼링크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주소창에 아래 링크를 복사해 붙여넣어 읽을 수 있습니다.)

▶장하성 형제 겨냥한, “죽어야 끝날 것 같은” 검찰 수사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13940.html?h=s

▶검찰, 칠순 ‘문재인 전 사돈’ 목욕탕까지 찾아가…보복기소의 전말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97145.html?h=s

▶내란 사건 “모자이크식 기소” 비난한 윤석열, 문재인 정권 수사는 더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94803.html?h=s

▶윤석열 역린 건드렸다 ‘집단 린치’ 당한 검사…핵심 참모는 승진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87478.html?h=s

논설위원 cjlee@hani.co.kr